르노 자동차 디자인·기술센터를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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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차를 제작하기 전에 영화속의 한 장면과 합성해 디자인 감각을 테스트하고 있다.

1일 오전 프랑스 파리에서 35㎞ 떨어진 귀앙꾸르의 르노 디자인.기술센터.

이 곳은 프랑스 자동차 기술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12만평 건평에 1만명의 연구 인력이 근무한다. 디자인부터 안전시스템, 성능 향상 센터 등 모든 연구 시설이 집결됐다. 과거 르노의 연구소들은 프랑스 내 50여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르노는 1988년 10억 유로(1조2000억원)를 투자해 이들을 하나로 모았다. 이에 따라 92년 59개월 정도 걸렸던 신차 개발기간이 현재 30개월 미만으로 단축됐다.

먼저 찾은 곳은 디자인 연구의 핵심인 20평 규모의 '할리 얼'룸이다. 이곳에선 영화 장면에 나오는 각종 거리와 호텔.휴양시설.산악 도로 등에 새로 디자인한 차를 컴퓨터로 합성해 주행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세계 처음으로 영화 필름을 이용한 디자인 시설이다. 지금까지는 신차를 디자인한 뒤 컴퓨터 모니터와 찰흙 모형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르노의 디자인 인력은 370명이다.

디자인 담당 안토니 그레이드 실장은 "새로 디자인한 차가 어떤 장소에서나 잘 어울리는지를 체크해 볼 수 없었던 것이 디자이너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이 설비 덕분에 호텔 앞이나 바닷가, 비가 오는 거리 등에서 신차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긴 공중 연결 통로를 지나 안전 연구센터에 들어섰다. 르노가 자랑하는 안전 장치가 모두 이곳에서 개발됐다. 르노는 54년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충돌 실험용 인형(더미)을 개발해 자동차에 적용했다. 충돌 이후 탑승자가 어떤 충격을 받는지, 또 실내에서 어떤 부위가 충격을 주는지 50여년간 연구한 데이터가 쌓여 있다.

자크 푸로 안전기술 담당 본부장은 "2000년 이후 승용차에 적용한 듀얼 시트벨트시스템은 사고 때 벨트 충격으로 인한 사망 건수를 70% 이상 감소 시켰다"고 말한다.

르노의 새로운 시트벨트는 정면 충돌 때 안전벨트가 복부 위로 미끄러져 장을 파열시키는 '서브마린' 현상을 막아준다. 르노는 또 사고 때 전해지는 시트벨트의 압력을 운전자의 연령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20대는 흉부에 가해진 800㎏의 압력을 견딜 수 있지만 70대 이후에는 300㎏만 넘어도 치명적이라는 더미 테스트 결과 때문이다. 이에 따라 르노는 우선 안전벨트의 압력 기준을 400㎏으로 낮췄다.

푸레 실장은 "현재 전 세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120만명으로 전체 사망률 가운데 10위지만 2020년에는 질병 사고가 줄면서 3대 사망 원인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안전 기술은 자동차 개발뿐 아니라 판매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르노는 전체 승용차 모델 12개 가운데 주력 9개 모델이 유럽 안전테스트(NCAP)에서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받았다.

파리=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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