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옛 동요 읽다보니 흥이 얼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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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길로 길로 가다가

전래동요, 인강 그림, 창비, 40쪽, 8800원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국내 그림책 시장에 창작물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90년대 초반 부터다.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 이야기', 권윤덕의 '만희네 집' 등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스테디 셀러들이 잇따라 출간되어 시장을 키웠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창작 그림책들은 서서히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아톤 출판사는 '한국 그림책 10선'이라는 이름 아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팥죽할멈과 호랑이' 등을 한 달에 한 권씩 선보였다. 지난 4월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3000여 명 중 80명을 뽑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한국 작가 7명이 한꺼번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기지개는 역시 창작역량이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보림출판사의 최정선 주간은 "한국은 해외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그림책 시장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또 보림에서 2000년부터 열어 온 창작그림책 공모전에는 해마다 100편이 넘는 작품들이 접수된다. 그만큼 그림책 출간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다.

다섯번째 책 '길로 길로 가다가'를 낸 '우리시그림책' 시리즈는 전래동요.어린이시.현대시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제주도 꼬리따기노래'에 그림을 덧붙인 첫번째 권 '시리동동 거미동동'과 윤석중의 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넉 점 반'은 각각 1만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도 얻었다. 시리즈를 기획한 모임인 '달.리'의 고선아씨는 "한국적 정서를 전하는 동요의 내용에 맞춰 그림 작가를 선정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책도 그런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길로 길로 가다가/돈 한 푼을 주웠네/떡전으로 갈까/엿전으로 갈까…"로 이어지는 그림책의 글은 멜로디는 상실된 전래 동요다. 이탈리아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온 작가 인강씨는 책 내용에 맞춰 서울 인사동과 황학동을 샅샅이 뒤져 옛 물건들을 찾아냈다. 석고점토를 사람 형상으로 주물러 깎고 다듬은 후 색을 입혀 콧수염에 중절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어수룩한 옛날 신사를 만들었다. 수집한 골동품들을 배경으로 콧수염 신사를 앉힌 장면은 영락없는 20세기 초반 우리네 삶의 풍경이다.

주운 돈으로 떡 두개를 샀지만 물귀신.송아지.처자식이 차례로 나타나 선수치는 바람에 결국 떡을 먹지 못했다는 콧수염의 익살맞은 반복 푸념이,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들과 함께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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