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문태준 <의박·대한의학협회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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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람의 일생은 시대상황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의사가 되고 한때 정치에 투신했다가 다시 의사로 돌아온 것도 모두 그같은 시대상황이 만든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내가 현 서울대의대의 전신인 경성제대의예과에 진학,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 직접적인 계기는 「일제의 학도병징집회피」였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중학생인 우리들에게 식민교육의 하수인이었던 교사들은 일본육사에 진학하거나 군에 자원(?)입대하도록 설득,강권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도구가 되어 총알받이 노릇을 하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면하는방법은 의대에 진학, 의사가 되는 길이었다. 의대생은 졸업때까지 학도병징집이 유예됐기 때문이다. 의사가 꼭 되고 싶었다기보다 해낼수는 있을것 같았다. 학도병회피라는 다급한 상황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는 선택으로 의학도가 된 셈이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 재미도 있었다. 「인간을 사랑하는」가장 구체적인 길로도 여겨졌다.예과 2학년때 해방을 맞았고 과를 옮길 기회가 주어졌다.
나처럼 다른 동기에서 전공을 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공을 바꾸기도 했지만 그대로 남기로 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졸업후 3년을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4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연세대의대에서 1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첫강의시간은 으레 「인간에 대한 사랑」의 설교로 1시간을 채우곤 했다.
의사가 되기앞서 「동기와 목표」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67년 국회진출은 개인차원에 머무는 의사란 직업의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생각이었으나 정치는 허무한 것이란 것이 요즘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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