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꿈은 의사인가" 흔들릴 때 MEET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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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의 한 학원.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입시 학원인 이곳에는 8월 29일로 예정된 제2회 의학전문대학원 입문검사(MEET)와 치의학전문대학원 입문검사(DEET)를 앞두고 200여 명의 수강생이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20대 대학생이었지만, 넥타이를 맨 30대 직장인과 꽤 나이가 든 주부도 제법 눈에 띄었다.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입시 붐이 불고 있다. 심지어 40대 초반의 직장인까지 가세하고 있다. 취업의 대안으로 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뿐 아니라,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희망하는 직장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준비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이처럼 희망자가 늘면서 서울 강남역과 종로 일대에는 전문학원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부산.대구.전주 등지에도 잇따라 전문 학원이 문을 열고 있다.

유기화학 강의를 들으러 왔다는 최모(34)씨는 한 대기업 연구원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최씨는 "외환위기 때 제일 먼저 '잘린' 직종이 바로 연구원들이었다"면서 "조금 고생하더라도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해 하루 5시간씩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수도권에 있는 한 의학전문대학원을 마치고, 3년 과정인 가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밟을 계획이다.

40대 초반의 중견 언론인인 이모씨는 지난 4월 직장을 그만뒀다. 올해 초 네팔로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그는 "현지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노년의 의사 부부를 보고 감동받았다"면서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걷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 식사도 샌드위치로 해결하며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올해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은 지난해 모집 규모(499명)의 2배 이상인 1036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2009학년도까지 해마다 모집 대학과 정원이 늘어난다.

<도표 참조>

교육부는 다양한 전공자들을 의료계에 끌어들인다는 전문대학원 설립 취지에 따라 MEET.DEET 시험을 쉽게 내고, 대학원별로 규정한 선수과목 이수 등의 제한도 푸는 방향으로 유도할 예정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올해 응시생을 연령별로 보면 25~29세가 전체 과반수(57%)를 차지했지만 30세 이상도 23.4%(659명)에 달했다. 특히 40대 이상도 25명이 원서를 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DEET 시험을 볼 예정인 주부 김모(32)씨는 모 여대 독문학과 출신이다. 스물다섯 살 때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다 뒤늦게 치과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오전에 집안일을 마친 김씨는 집 근처 대학으로 간다. 자신이 응시하려는 치의학전문대학원이 생물 등 3과목의 학점 취득을 응시 요건으로 하고 있어 이를 채우기 위해 집 근처 대학의 '시간제 등록제도'(돈을 내고 과목을 듣고 학점도 따는 것)를 이용해 강의를 듣고 있다. 그는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서울 서초동의 한 전문학원에서 집중적으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입시 붐에 대해 무작정 취업이나 재취업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15일 마감된 올해 MEET.DEET 시험은 총 2818명이 지원, 2.7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치의학전문대학원의 경쟁률은 3.2 대 1로 의학전문대학원(2.37 대 1)보다 높았다. 그나마 시험이 지난해 시작됐고, 선수과목 이수 등 응시 조건이 있어 아직 경쟁률이 높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올라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여기에다 고시와는 달리 이 시험은 의대 입학시험에 불과하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어렵게 대학원에 들어가도 전문대학원 과정 4년을 마치고 의사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전문의를 따려면 추가로 4~5년(인턴 포함)을 더 공부해야 한다. 의사 공급 과잉으로 과거 같은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0년가량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글=윤창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