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with] 김소연씨의 아쿠아리스트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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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고, 일이 있어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행복하고, 하루 하루 숨 쉴 수 있어 행복하다는 김소연(25)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녀의 아쿠아리스트 체험,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정리=이진수 기자 <torc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천식과 당뇨= 체육 시간, 난 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신나게 뛰어 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천식이라는 놈. 어려서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새벽녘, 숨을 못 쉬는 나를 안고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를 보면서 그놈이 참 미웠다. 그래서 시작한 수영. 죽어라 물살을 헤쳤다. 성악이며 헬스, 벨리댄스 등 닥치는 대로 운동에 매달렸다. 그렇게 6년 정도 지났을까. 환절기 단골 손님인 감기가 사라졌다. 폐활량도 일반인보다 높게 나왔다. 인간승리라며 기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나도 비로소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엔 당뇨가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젠 힘들다고 마냥 울어대던 10대 소녀가 아니다. 천식이란 놈과 친구 하며 그를 이겨냈듯 내 몸에 들어온 당뇨도 자신 있었다. 천식과 당뇨.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만 자신감이란 큰 선물을 준 고마운 놈들이다. week&의 아쿠아리스트 체험은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숨쉴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20대 숙녀에겐.

두드리면 열리리라="맞는 옷이 없어 안 되겠는데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63시티 씨월드팀의 정중한 거절.

178㎝의 육중한 몸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옷은 직접 구해오겠다며 사정했다. 이번엔 내 열정이 전화선을 타고 전달됐을까. 망설이던 그도 결국 허락해 주었다.

드디어 체험 날. 물고기와 함께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아쿠아리스트. 경력 13년차인 한득희(32)씨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수족관의 물고기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 내게 환상에 빠지지 말라며 당부부터 앞선다. "저기 저 거북이 보이죠. 여기선 네로라고 불러요. 나이 106살, 몸무게가 20㎏이 넘죠. 순해 보이지만 가장 경계해야 돼요.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거든요." 게다가 바다의 신사라는 노란 가오리도 위험 대상이란다. 곧잘 허벅지나 엉덩이에 달라붙어 무는데 수트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독자체험? 공포체험?=우선 물고기 먹이부터 준비했다. 오징어.새우.임연수어 등을 먹이는데 오늘은 오징어 손질이다.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고 싶어 서둘렀던 게 한씨 눈에 거슬렸나 보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더 정성스럽게 해야 돼요. 내장은 다 제거하고 물로 깨끗하게 씻으세요. 물고기는 아프다는 말도 못하잖아요."

물고기는 그들에게 가족이었다. 한씨가 나를 본 건 정성이지 솜씨가 아니었다.

드디어 간단한 수트 착용법과 호흡법을 익히고 물에 들어갈 차례. 물고기가 몰려 와도 절대 당황하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이어진다. 무거운 산소통에 8kg짜리 벨트를 착용하자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씨와 함께 들어간 물 속 세상은 밖에서 보던 것과 사뭇 달랐다. 물에 대한 공포심은 없었다. 그러나 거대한 물고기들이 내 앞을 지나갔을 때 이미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긴장할 때쯤 거북이와 가오리가 보인다. 온몸이 굳어지는 걸 느낀다. 동화 속에서나 봤던 착한 거북이는 더 이상 없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텅 비어가는 느낌. 한씨의 손을 잡고 바둥거리자 한씨가 손으로 그들을 밀쳐낸다.

잠깐 물 밖으로 올라와서 쉴 때마다 한씨는 내가 겁이 많다고 웃는다. 긴장하면 더 위험하니까 자신을 믿고 편하게 물고기를 대하란다. 그러면 그들도 마음을 열 거라고.

"인어공주세요?"=다시 한씨의 손을 잡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먹이통을 들고 들어가니 수십 마리의 물고기가 나를 에워싼다. 나도 먹힐 것 같은 두려움에 하나씩 줘야 하는 먹이를 여러 개 던져버리듯 주기도 했다.

체온이 떨어지고 몸의 움직임도 둔해지는 걸 느낄 즈음. 용기를 내어 멀리서 오는 물고기에 팔을 뻗어 먹이를 내밀었다. 순간 놀랍게도 무리 중 그 녀석만 내게로 와서 손가락을 빠는 게 아닌가. 마음이 통한 걸까. 짧은 시간이나마 교감을 하니 행복감이 밀려 왔다. 물 속 세상에 대한 공포심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어느새 내 자신이 커다란 물고기라도 된 듯했다. 먹이를 주는 내 손을 그들이 빨고 지나갈 때의 짜릿함이란. 게다가 밖의 아이들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들뜬 마음에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이 날 보며 선생님에게 물어보더란다. 저 사람이 인어공주냐고.

물 속 세상. 그곳에선 육중한 나의 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식과 당뇨란 병도 물고기처럼 친구일 뿐, 더불어 숨쉬는 노력만 있으면 그만이다. 두려움과 공포도 잠시.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도 내게로 왔다. 이 순간만큼은 난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라 인어공주였다. 적어도 물고기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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