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트 최후의 회고록|유고 『나익의지』…위행본출간앞서 본지독점게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3년초 나는 우므라순례(소순례·순례하는 달이아닌 시기의 성지순례)를 하기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들르면서「가다피」리비아혁명평의회의장의 요청이 있어 그와 동맹했다. 나는 파키스탄의 라흐르에서 열리는 이슬람회의에 참석하러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리야드를 방문, 「파이잘」국왕을 만났다.
내가 오래전부터 알았던 「파이잘」국왕은 대단히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이상적인 아랍의 현자였다.

<13살부터 정치생활>
「파이잘」국왕은 기억력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할때 날자와 장소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인용했고, 듣는 사람의 입장도 정확히 묘사하는 정도였다. 그는 그런 유목민의 응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30∼40년전에 있었던사건이나 대화를 회고할때에도 그는누구가 왼쪽에서 네번째자리에 앉았었고, 어떠어떠한 옷을 입었으며, 「알리·알루바·파사」의 의견은 이렇고, 「마무드·파미·노크라시」의 견해는 저랬으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식으로 말할 정도였다.
「파이잘」국왕은 13살때부터 정치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국왕의 선친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이미 국제정치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국왕은 정치세계에서 솔직함과 성실성, 그리고 높은 자질을 터득했다.
「파이잘」국왕과 만난 45분동안「가다피」는 여태까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팔레스타인문제의 이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파이잘」은 가장 상세한 부분까지도 알고있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었다.
그가 얘기하고 의상한 모든 일에그는 참여했었다. 그는 역사를 만드는데 참여했듯이 역사를 기록하는데도 참여했던 것이다. 「파이잘」국왕이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밝힌 중요한 역사적 사실가운데 하나는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고 있던 영국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팔레스타인 행정권을 넘겨주는 대신에 유대인 5만명의 이지역 이주를 동의하도록 팔레스타인인에게 제안한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은 영국의 제의를 거절했다.
아랍측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영국의 제의를 거절한것을 지지했는데, 아랍인들은 정치현실에서 거절밖에는 다른말을 모르는 사람들이었기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어쩌면 아랍측은 문제해결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측이 그 제의에 동의했던들 그들은 아랍게국의 많은 문제와 걱정, 유혈과 재난, 그리고 생명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별항 참조)
유대인 수백만명가운데 5만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겁먹을 일은 아니었다. 그점도 숫자라면 포용될 수있었고 아랍국가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않았을 것이었다.
「파이잘」국왕은 역사적 인물로서 보다는 아랍역사의 기록자로서 객관적인 전망과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아마르·엘·가다피」는 「파이잘」 의 교훈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정난원조에 감사>
나와「파이잘」국왕과의 관계는 상호 애정과 존경의 관계였다. 그와의 오랜 경험에서 보면 「파이잘」은 말로 약속한 것이라도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은 곧 법이었으며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건전한 관계와 위인의 이상적인 표본이었다. 62년 예멘전쟁중에도 우리 양국의 기본입장이 서로 달랐지만 나와 「파이잘」국와과의 유대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75년3윌「파이잘」 국왕이 서거했을 때까지 그와의 강력한 유대관계는 우애와 우정으로 지속됐다.
「파이잘」국왕이 보여준 고결한 기사도정신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지않고는 못배기도록 만들었다. 67년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측이 패배한뒤 그해8월 카르툼(수만)에서 아랍 정상회의가 열렸다. 「낫세르」대통령은 이회의에서「파이잘」국왕을 만났다. 당시 「파이잘」국왕은 반동주의자로 비난을 받고 있었을 때였다.
「파이잘」국왕은 「낫세르」의 패배(주·67년6월5∼10일까지의 제3차중동전)를 기뻐하지 앉았었다. 오히려「파이잘」국왕은 쿠웨이트와 리비아와 합께 수에즈운하 운영예산과 맞먹는 액수의 경제원조를 이집트에 제공하기로 결정해 「낫세르」를 감복시켰다. 「낫세르」는 당초 원조액수가 기것 5백만파운드를 넘거나 많아봐야 1천만파운드정도로 생각했었다. 쿠웨이트의 「압둘라·에스살렘」도 「파이잘」에게 그정도의 액수를 추장했었다.
그러나 「낫세르」는 「파이잘」국왕의 결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파이잘」은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5천만파운드를 원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쿠웨이트에 대해서도 5전5백만파운드를 원조하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