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와이 『애리조나 해저기념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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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하와이의 많은 절경 중에서 펀치볼의 언덕은 사화산의 분화구로서 이 속에 국립묘지가 자리잡고있다. 묘지라고 해도 잘 가꾸어진 잔디 속의 널찍한 콘크리트판이 있을 뿐이어서 공원과 같은 분위기다. 묘지중앙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양쪽에 제2차 대전, 한국전쟁, 월남전쟁 등에서 전몰한 수만의 용사들의 계급과 이름이 새겨진 벽이 나란히 서있다. 그 중에서 계단 오른쪽으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마치 내 가족의 이름을 더듬어가듯 그 많은 이름들을 보고 있노라니 숙연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문득 내 옆에서 조용히 눈물짓고 서있는 노부부가 있었다. 아마도 자기 아들의 이름이 적힌 곳인 듯, 벽 한곳을 오래오래 쳐다보며 묵념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나의 숙연한 가슴속을 더욱 뭉클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번 하와이여행은 마침 필자가 관여하는 국제 키비탄클럽의 하와이지구에 있는「킹」씨가 안내를 해주어 진주만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킹」씨는 바로 그때에 진주만에 있는 미해군공창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의 설명은 나에게 그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당시 진주만 공격작전에 동원됐던 일본 기동함대 33척 중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은 것은「설풍」이라고 명명된 구축함 1척 뿐이었다고 한다.
한편 미군은 오하후섬 북쪽의 기후스에 있는 레이다에서 일본의 비행편대를 잡았으나 때마침 캘리포니아에서 비행하여 올 예정이던 B-17 12대로 오인하는 바람에 더욱 큰 희생을 당했다고도 한다.
당시 미해군은 전함8척, 대소함정 94척이 있었으나 그중 전함5척을 비롯, 18척이 대파 또는 침몰되었다.
진주만에서 최초로 희생된 전함은 유타호로서 아직도 빨갛게 녹슨채로 그 선체가 바닷속에 놓여 있다.
전함 네바다는 일본군의 공습 속에서도 용감하게 발진한 유일한 함정이었으나 좌초하고 말았고, 전함 애리조나는 희생이 가장 컸던 함정으로서 함장이하 1천여명의 유해가 아직도 그대로 바닷속에 잠겨 있는데, 지금은 이것이 해저묘지가 되어 침몰한 애리조나호위에 백색의 아담한 기념관이 서있다.
이 기념관을 방문했을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기념관이 침몰한 애리조나호와 십자형의 엇갈린 모양으로 건립돼 마치 십자가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분명히 자유와 평화, 그리고 조국을 위해 십자가를 진 사람들이며 먼 후손들에게까지 전쟁의 허무와 비참,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경종을 올리는 산 교훈을 주기 위해 저렇게 푸른 바닷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정면의 제단에 한국해군제독이 바친 화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배 위에 올랐을 때. 뒷좌석의 미국 노신사 한분이 악수를 청하는데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아마 그에게도 기막힌 사연이 있으리라.
바닷 속에 잠긴 1천여명의 미국 젊은이들, 그리고 지금 와이키키 해변을 누비는 수많은 일본관광객들-이 얼마나 기막힌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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