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레이디는 외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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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매일 밤 11시30분이나 자정이 돼야 귀가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를 볼 시간이 거의 없어요. '일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남편을 설득할 정도예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부인 류드밀라 여사가 지난 1일 남편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다. '세계 어린이 보호의 날'을 맞아 현지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였다.

류드밀라 여사는 "가족들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늦게까지 식탁에서 기다려야 하며, 어렵게 대화 시간이 생겨도 일상적인 얘기만 한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러시아 정계에서 대통령 부인이 공개적으로 가정사를 밝히면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류드밀라 여사와 같이 세계 주요 국가의 대통령이나 총리 부인들이 가족에 무관심한 남편들에 대한 불만과 외로움을 털어놓았다고 미국 시사잡지 타임 최신호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남편들이 국정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면서도 "'가족정치'에는 너무 소홀하다"는 원망이었다.

최근 결혼 25년을 기념하는 은혼식을 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 여사는 "남편이 꽃 한번 선물한 적이 없다"며 블레어 총리의 무심함을 성토했다. 셰리 여사는 "남편이 외도하지 않는 것은 25년 결혼생활이 견고했기 때문이 아니라 만일 한눈을 팔면 내가 그를 죽일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뜨끔한 경고성 농담까지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두 번째 부인인 베로니카 라리오 여사도 최근 "남편을 자주 보고 대화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남편과 전화로 대화를 나눌 뿐 아니라 때론 TV로 그를 보기까지 한다"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는 지난 4월 기자들에게 "오후 9시면 남편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나는 혼자 '위기의 주부들'이란 TV 프로를 본다"며 외로움을 호소했다. 또 "남편에게 '조지, 당신이 정말 세계에서 폭정을 종식시키길 원한다면 좀 더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고 털어놓았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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