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양의 평양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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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수상 조자양의 평양방문이 표면적으로는 친선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최근 몇 년동안 주목된 북한·소련관계강화와 무관한 것 같지가 않다.
중공내부에서 등소평·호요방의 대미·일협력노선이 정착되는 단계에서 북한·중공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고, 북한·중공·소련의 3각관계에서 북한·중공관계가 강화되면 북한·소련관계는 반사적으로 강화되게 마련이었다.
평양·모스크바관계가 눈에 띄게 가까워진 것은 대개 79년부터로 생각된다.
특히 우리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든 것은 소련선박들의 나진항 출입이 부쩍 늘어난 사실이다.
서방측의 정보통들이 전하는 것을 보면 부동항인 나진항에는 최근에 세 번째의 부두가 완공되어 거의 독점적으로 소련선박에 의해 사용되고 작년부터는 나진항과 소령군항 블라디보스토크간에 정기열차가 개통되었고 지금은 도로까지 건설중이라고 한다.
북한·소련관계는 직접적인 군사제휴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련의 주력전차 T62의 라이선스생산을 시작하여 79년과 80년에 1백30대를 생산하고 가까운 장래에 미그23개의 라이선스생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서방관측통들의 예상이다.
소련은 북한과의 제휴강화를 통해서 최소한 두 가지의 군사·외교목적을 달성한다고 보겠다.
하나는 나진항의 사용권을 확보함으로써 베트남의 캄란항과 함께 소련태평양함대의 작전반경을 넓혀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일대에서 미국의 7함대 및 신속배치군(RDF)과 대등하는 배후기지를 강화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중공관계에 쐐기를 박아 중공의 대미·일협력노선에 가능한 견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소련은 김일성체제의 교조주의적·전근대적체질과 등소평·호요방체제간의「상대성」을 십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뉴욕 타임즈지도 그렇게 관측을 했지만 조자양의 임무는 중공의 실용주의노선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무마하고 평양의 모스크바를 견제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그러나 조자양의 평양방문의 성과를 재기는 어렵다. 중공이 북한에 대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렛대」가 어떤 것인지 우리들의 눈에는 확실치가 않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는 중공이 소련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북한·소련국경선이 불과 16㎞인데 비해 북한·중공간 국경선은 장장 4백㎞나 된다는 사실 하나로도 북한의 소련밀착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소련이 북한에는 최대의 근대병기의 공급원이라는 사실, 중공이 한국의 동맹국가인 미국, 우방인 일본과「자본주의방식」의 협력을 강화,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계속 소련의 소맷자락에 매달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하겠다.
김일성은 지금 소련만은 북한의 남침에 동조할 것으로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공은 등소평의 일을 통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남침불가」를 밝혔고, 특히 작년1월 북경을 방문한「브라운」미국방장관에게는 북한이 남침할 경우 중고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소련의 지지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조자양의 평양설득행각에서도 이런 기본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리라고 기대하고 싶다. 중공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중공 스스로 구미일의 선진자본주의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국민들의 행복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을 북한지도자들에게 보여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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