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한·일 해상 대치 39시간] "더 악화 땐 관계 회복 불능" 위기감 공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2일 신풍호 선원들이 해경 경비정에서 협상타결 소식을 전해들은 뒤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꼬여만 가던 한.일 관계가 '신풍호 사건'으로 정상화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낙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심각한 대치 상황이 계속되던 1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미 갈등 상태인 양국 관계에 치명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제기됐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미 관계 폄하 발언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터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들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얘기를 나눠보니 양측 모두 '여기서 더 악화되면 한.일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자연스레 공유하고 있었다"며 "이후 희망을 갖고 본격 협상에 돌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침 일본 외무성의 2인자인 아이사와 이치로(逢澤一郞)일본 외무성 부상이 방한해 이날 오후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예방하기로 돼 있었다. 이들은 예정됐던 30분 면담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머리를 맞댄 채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리고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 최대한 빨리 사태를 해결한다"는 대원칙에 합의했다.

이후 양국 외교부 당국자들 간에 밤샘 협상이 이어졌다. 전화와 팩스를 수시로 주고받으며 구체적 해법을 조율해 갔다. 노무현 대통령도 2일 오전 "상호 주권과 이해를 존중하면서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고, 협상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대치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며 협상팀을 격려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도 "대화를 통해 잘 협의하도록 지시했다"고 화답했다. 한 당국자는 "최근 일련의 사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국 외교 실무라인이 이번 기회를 통해 정상적으로 재가동됐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상 대치 상황이 양국 국민감정을 자극하기가 무척 쉬워 우려를 많이 했는데 원만히 해결돼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당장 신풍호 선주가 일본 측에 내기로 한 위반담보금 50만 엔의 처리 문제도 향후 실무협상 여하에 따라 또 다른 불씨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일본 측이 신풍호 선주와 선장 등에 대해 궐석재판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