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교수의 보석상자] 불행 부르는 호프 다이아몬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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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진한 청색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호프(Hope) 다이아몬드는 이름과는 달리 불행을 부르는 전설로 유명하다. 이 보석은 인도산으로 프랑스의 보석상인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가 구입해 프랑스로 가져왔다. 그는 112캐럿의 이 다이아몬드를 루이 14세에 팔았다. 루이 14세의 명에 따라 보석은 삼각형 배 모양의 67.5캐럿으로 세공됐으나 루이 14세는 이를 귀하게 여겨 단 한 번만 몸에 지녔다. 그래서 불행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루이 15세 역시 이 왕실 보석을 지니길 삼가고 애인인 듀발리 자작부인에 빌려줬다. 듀발리 부인은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 참수됐다. 이어 루이 16세는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었다가 나중에 의식용 예복에 장식했다. 두 사람 역시 혁명의 와중에서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이 '프렌치 블루 다이아몬드'는 1792년 왕실보석관에서 도난당해 사라졌다. 함께 잃어버린 보석들은 국외로 팔려간 것까지 대부분 회수됐지만 이 신비의 다이아몬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38년이 지난 1830년 경매장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푸른 다이아몬드는 런던의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에 9만 달러에 팔렸다. 이 다이아몬드를 팔아넘긴 영국인 보석상 데이비드 에리아손도 낙마 사고로 횡사해 또 다른 불행의 주인공이 된다. 호프가 구입한 푸른 다이아몬드는 45.5캐럿으로 줄었을 뿐아니라 모양도 달라진 뒤였다. 호프가 죽은 뒤 보석은 조카인 헨리 토머스 호프의 소유가 됐다. 이때부터 보석은 '호프'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호프가 6.5 캐럿의 '브런즈윅 푸른 다이아몬드'와 함께 프렌치 블루 다이아몬드에서 쪼개져 나온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헨리 토머스의 부인이 1887년 사망한 뒤 보석은 유언에 따라 손자인 클린턴 호프 경에게 상속됐다. 호프 경은 1894년 미국의 여배우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 설상가상으로 재산까지 모두 날린 호프 경은 빚 청산을 위해 보석을 판다. 불행이 이어진 것이다.

보석은 터키의 술탄인 압둘 하미드 2세에게 45만 달러에 팔렸다. 하미드 2세는 4명의 부인 중 하나인 수바야에게 보석을 선물했으나 혁명의 기운에 놀라 1911년 피에르 카르티에에게 팔아버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테살로니케에 유배됐다 1년 만에 병사했다. 호프는 다시 워싱턴 포스트의 전 소유주 에드워드 비 매클린에게 팔렸다. 47년 맥클린 부인이 사망한 뒤 뉴욕의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구입해 보유하다 58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처럼 이 아름다운 보석은 많은 소유자의 급작스런 죽음과 두 왕실을 황폐화시킨 전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프 다이아몬드가 불행을 가져온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클린 부인은 그것은 미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윈스턴 역시 보석 소유가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여생을 마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보석은 단지 그 신비함만큼의 전설을 만들어낼 뿐이다.

문희수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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