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건국신화가 없는것은 고구려계화 한족의 공존때문`|고전문학연구회 최래옥ㆍ서대석교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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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0월부터 시각된「백제신화」에 대한 토론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전문학연구회(회장 황구강)의 최래옥(숭전대)서대석(이대)교수가 중심이 되어 전개된 이 논의는 백제신화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문제제기」로서 학계에선 올해 주목할 연구성과의 하나로 꼽고 있다.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고구려·신라·가락국·탐라국은 물론 후백제까지도 그들의 건국신화를 전승해오고 있는데 단지 백제만이 자신의 신화를 남기지 않고 있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최교수는 우선, 초기에는 북방 고구려계의 지배로 말미암아 같은 계통의 시조(온조왕)를 신격화하는데는 난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후엔 원래 있었던 마한을 점진적으로 잠식, 정복함으로써 이러한 이동성은 유일 신화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백제의 패망으로 그 문화적 긍지도 말살됐기때문에 신화 유지에 일대 타격을 주었다. 따라서 백제의 신화는 전설이나 민담 또는 다른 신화로 전환되어 전승되고 있다고 최교수는 주장한다.
한편 서대석교수는 백제건국의 주역이었던 온조세력이 고구려에서 가지고 내려온 북부여계의 신화와 마한지역에 거주했던 한족의 부족신화가 공존했다고 본다.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고 동명왕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백제의 국조신화는 주몽신화를 계승했으리라고 보고 온조를 주인공으로한 독립된 국조신화는 없었던 것으로 그는 지적한다.
서교수는, 그러나 백제에 정복당했던 마한지역의 시조신화는 이와 달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수리산전설」(충남전기군)로 대표되는 마한지역의 부족신화는 부계를 수신으로, 모계를 지신으로 하여 시조인 우자(마을수호신)가 탄생된다는 것으로서, 이는 농경사회에서 수신의 비중이 컸음과 아울러 지신신앙이 중심이었던 점을 말해 준다고 서교수는 주장한다.
서교수는 한지역의 복속층이 세력을 확장하고 발언권을 가지면서 왕의 출생담이나 전설로 변모되어 나타난것이 무왕과 견훤의 전설이라고 본다.
서교수는 또 부계를 수신으로 했던 한의 시조신화는 불교가 전래된후 불교사상과 섞이면서 미륵사상으로 변모했다고 본다. 수신인 용은 옛말로「미르」「미리」이며 이는「미륵」과 통한다.
이처럼 초기의 생산신으로서의 수신신앙이 미륵신앙으로 바뀌면서 백제지역에서의 미륵신앙은 호국신앙의 성격을 띠고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고구려계(천부지모신)와 한계(지모수부신)의 상관관계 속에서 백제신화의 면모를 살펴본 서교수는 그러나 이것이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한 한 시론임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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