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북한 핵개발 저지할 수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로버트 칼린은 미국 최고의 한국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북한을 30여 차례 방문했다. [사진 길산]

두 개의 한국
돈 오버도퍼·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양은미 옮김, 길산
928쪽, 3만4000원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은 제목이 당혹스럽다. 원제의 ‘코리아즈(Koreas)’가 마음에 걸린다. ‘코리아’가 아니고 ‘코리아즈’라니. 통일 전까지는 그게 현실이다. 미국에서 출간된 한국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다. 미국에서 현대 남북한관계사의 고전 중 고전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언론인 출신인 돈 오버도퍼와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로버트 칼린이다. 개정 3판이 출간됐다. 책에서 2001년에서 2013년까지를 집필한 로버트 칼린을 인터뷰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 북한은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있는가.

 “ 외면상 확실히 변화가 있다. 휴대전화를 쓰는 등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으며 일부지만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다. 기아문제도 전과 같은 수준의 위협은 아니다.”

 - 책을 보면, 제목을 ‘두 개의 한국과 미국’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 남북관계에 국한된 내용에도 여기저기 미국의 그림자가 있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최근 10~15년 간의 변화는 러시아의 역할이 많이 줄었고 중국의 그림자가 커졌다는 점이다.”

 - 사회과학과 달리 역사학이나 저널리즘은 일반화를 꺼린다. 그럼에도 북한의 행태나 남북관계에서 어떤 일반화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가.

 “있다. 대부분의 패턴이 불행한 것들이다. 한 쪽이 드디어 관여(engagement) 정책을 펼 준비가 되면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 양쪽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일치시키는 게 매우 어렵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 일정도 한 원인이다. 북한은 주기적으로 정부가 바뀌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지속성 있게 관여 정책을 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 북한이 ‘진실된(sincere)’ 태도로 임한 적이 있었다고 봐야 하는가.

 “’진실된’은 매우 재미있는(funny) 단어다. 나는 대신 진지한(seriou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북한은 어떤 이유에서건 대화나 관여 정책을 펴기로 일단 결심한 다음에는 진지했다. 나는 북한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는 척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과 상당기간, 특히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진지하게 관여 정책에 임한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 북한은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대표단을 보냈다. 새로운 관여 정책이 시작된 것인가.

 “대표단이 한국 고위 인사들을 만난 것을 보도했는지 또 보도했다면 어떻게 보도했는지 자잘한 신호라도 눈여겨봐야 한다. 예컨대 한국 국무총리에 인용부호를 둘러 ‘국무총리’라고 표기했다면 아직은 생각이 좀 다른 것이다.”

 - 대북관계에서 미국과 한국의 최대 실수는.

 “미국의 경우에는 1994년 10월 21일의 북미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북한의 핵개발 포기, 북미수교, 북한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주 내용으로 함)를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폐기한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우라늄 농축 등의 문제에서 진전을 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합의였다. 폐기하고 나니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통제할 대안이 없었다. 큰 실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과 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이전 정부가 이룩한 성과를 계승하지 않고 폐기했다. 그 결과 그는 5년을 허비했다.”

 -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게 가능했을까.

 “그렇다고 본다. 21일에 20주년을 맞는 제네바 합의로 2001년까지는 영변 핵시설의 가동이 중단돼 새로운 플루토늄 생산은 없었다.”

 - 영어에 ‘먹어버린 케이크를 갖고 있을 수는 없다(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라는 표현이 있지만, 북한은 핵무기와 북미수교를 모두 가질 수 있을까.

 “북한은 바싹 마르고 맛 없는 케이크를 갖게 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을 지닌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차기 미국 정부가 조금이나마 고삐를 풀어주고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않는 가운데 케이크를 조금씩 떼어먹는 것이다.”

 - 한국에는 김대중 정부가 ‘퍼준 돈’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돈이 핵개발에 전용됐다는 신빙성 있는 근거를 들은 바 없다. 엄청나게 많은 돈도 아니었다. 북한에겐 핵개발에 쓸 자금을 쥐어짜낼 수 있는 많은 재원이 있다. 약간 도움이 됐더라도 핵심 역할은 하지 못했다고 본다.”

 - 한국의 통일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내가 북한 문제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 것은 40년 전인 1974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통일에 더 다가서지 못했다. 한국이 보다 영리하고 지속적인 정책을 펴지 않는 한, 그리고 뭔가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분단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는 상황을 현저하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김대중 정부를 거론할 필요 없이 노태우 정부만 봐도 그렇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 출신의 보수주의자였지만 남북관계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지 않았는가. 다시 그런 진전을 이루는 게 가능하다.”

김환영 기자

[S BOX] 미국에 한국 전문가 적은 이유는

『두 개의 한국』 개정 3판은 새로운 정보에 따라 2001년 이전의 내용도 수정됐다. “이 책이 고전이 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칼린은 “딱딱한 팩트를 쉽고도 솜씨 있게 엮은 오버도퍼의 놀라운 문체, 수준 높은 저널리즘, 한국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이 결합돼 독자들이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한국 전문가 현황에 대해 물었더니 우려를 표명했다. “불행히 수가 많지 않다. 한국 문제에만 수년간 진지하게 집중한 전문가 수는 더욱 적다. 북한 문제는 그 성격상 매일매일 고도로 집중해야 한다. 막대한 재정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한국 전문가들은 시간적·재정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북한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들은 세밀한 관찰이 아니라 일반 상식에 의존한다. 또 많은 잘못된 정보와 신화가 떠돈다. 그 결과 우리가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 지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잘못됐다.”

 예를 들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지난 20여 년간 북한을 상대로 모든 것을 다 시도해봤지만 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여 정책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단정한다. 완전히 잘못됐으며 위험한 이해다. 제네바 합의만 봐도 실패한 게 아니라 미국이 버린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칼린은 한국의 노령화를 걱정했다. 한국에 애정 어린 관심을 지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