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발 금융위기 국내엔 '찻잔속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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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최근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헤지펀드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에서 제기되고 있는 헤지펀드 위기설이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은 작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 국내와 국외 시장을 파생상품으로 엮어 거래 금액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려나가는 헤지펀드의 속성을 감안할 때 무작정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 위기설 왜 불거졌나=이달 초 신용평가회사인 S&P가 GM과 포드의 회사채를 투기등급채권(정크본드)으로 떨어뜨리면서 미국 뉴욕 금융가를 중심으로 헤지펀드 위기설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올 초 헤지펀드들은 미국 내 최대 회사채 발행사인 GM의 주식과 회사채 수익률을 연계한 차익거래에 나섰다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이들은 GM 주가 하락과 채권값 상승을 예상해 주식을 팔고 회사채를 사들였지만 미국의 백만장자 커코리언이 GM 주식에 대한 공개 매수를 선언하고 GM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됐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헤지펀드와 은행들이 GM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178억 달러, 포드에서 140억 달러 등 모두 320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계는 '헤지펀드 발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998년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 해결을 주도했던 제리 코리건 골드먼 삭스 이사가 미국 주요 투자은행 관계자를 만나 금융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 국내에 미칠 영향은 없나=금융 당국과 증권.채권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투자자 1만7000개 중 헤지펀드는 1000개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채권시장보다는 주식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금융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채권시장의 경우 지난해 2857조원에 달하는 거래액 중 외국인 비중이 0.5%에 불과해 헤지펀드가 영향을 미칠 여지가 거의 없다.

주식시장에서도 헤지펀드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 피난처를 소재지로 등록한 외국인의 주식 보유 금액을 따져본 결과 시가총액의 5.7%를 차지했다. 금융권에선 일반 펀드도 절세 등을 위해 조세 피난처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할 때 헤지펀드의 비중이 3~4%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헤지펀드가 유달리 투기적으로 움직인다는 증거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주식 현물시장과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에서의 외국인 거래 비중은 모두 23% 안팎으로 비슷했다.

나현철.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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