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268>|제75화 패션 50년(4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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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무릎위 20cm까지 올라갈대로 올라간 미니에 대한 반동으로 맥시와 미디가 선보인것은 69년 가을이었다.
그러나 멕시는 패션쇼의 눈요깃거리 정도요, 외국에서 한창 유행이라는 미디도 뒤늦게 미니의 전성기를 맞은 우리 눈엔 어설프기만 했다.
그래서 때마침 유행을 보기시작한 팡탈롱과 함께 미니는 롱 재킷과 미니스커트, 혹은 미니코트와 팡탈롱으로 한짝을 이뤄 69년 가을·겨울을 장식하면서 70년대의 3M시대-이른바 미니·미디·맥시 공존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된다.
이때 나온 새로운 패션용어가 코어디네이트 루크와 토털 루크 예전처럼 원피스는 원피스로서만, 혹은 재킷은 스커트와만 입는다는 공식이 깨지고 전혀 엉뚱한 옷을 함께 입음으로써 어떤 새롭고 묘한 조화를 창조해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때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블라우스속에 T셔츠나 스웨터를 받쳐 입는다거나 짧은 소매의 미니원피스 속에 긴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팡탈롱을 걸치는 식의 색다른 입음새가 새로이 시도되었다.
을트라마이크로 미니까지 선보인 미니전성기였으므로 허전한 느낌이 들만큼 한껏 드러난 다리를 위해 옷감과 똑같은 소재로 된 스타킹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액세서리는 금속제 사슬 목걸이를 여러겹 두른다거나 금속 단추·금속 버클등 일련의 금속제품이 선보였다.
또 하나 두드러진 경향은 재킷이나 코트와 같은 소재의 모직이나 혹은 털실로 만든 긴 스를(목도리)의 유행을 들 수 있다.
미니 원피스인지 블라우스인지 구별이 모호한 롱셔츠를 스커트 밖으로 내고 허리부분에 체인 벨트를 느슨하게 둘러매던 것도 이 무렵의 유행이다.
자꾸 짧아지기만 하는 스커트와는 정반대로 한껏 길어진 재킷 역시 미니 코트와 얼핏 구분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이처럼 코어디네이트 루크와 토털루크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60년대말에서 70년대 초가 우리 한국 여성들이 차츰 개성미에 눈뜨기 시작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멋이라고 하면 반드시 최신 유행에 맞춰 장만한 일습 의상이어야만 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있는 여러가지 옷들을 이렇게 저렇게 입어 보면서 가장 멋지게 어울리고 효과있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혼자서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 이무렵부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따라 『옷의 입음새』라느니 『멋의 연출』이라는 새로운 표현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대망의 70년대를 눈앞에둔 69년말의 우리네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유행의 흐름 못지않게 주목해야할것은 새로운 화학섬유의 등장이다.
폴리에스터란 이름의 화학섬유의 총아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69년. 경기도 수원과 전북 전주에 세워진 폴리에스터 생산공장이 가동됨으로써 우리나라도 비로소 본격적인 합성시대를 맞이하게 된것이다.
이때부터 워시 앤드웨어(빨아서 바로 입는 옷감)란 말이 실감되기시작했고 그만큼의 생활이 간편해져서 가정주부들의 일손이 한결 덜어졌다.
거기에 더해 우주시대를 지향하는 스페이스 루크의 영향까지 겹쳐 차가운 느낌을 주는 에나멜(칠피)이나 레저등 합성피혁도 새로운 의상소재르 각광을 받기시작했다.
특히 합성피혁의 대명사처럼 된 레저는 그때까지 기껏 남성용 점퍼나 만들던 통념을 깨고 여성용코트나 재킷스커트등의 소재가 됨으로써 새로운 감각의 패션세계를 여는데 한 몫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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