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3264>|제75화 패션 50년 (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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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9년에 접어들면서 미니모드가 위세를 떨치자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 유행추세에 맞춰 각종 액세서리나 의상 부속품들은 미니모드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스타킹으로서 심리스스타킹에 이어 꽃무늬나 줄무늬를 넣고 짠 무늬스타킹, 이전의 피부색 위주를 벗어나 연보라나 그린색등 각가지 빛깔의 컬러스타킹, 그리고 그물처럼 짠 망 스타킹 등 다양한 종류가 상품화되어 바야흐로 유행의 중심이 각선미에 맞춰진 것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스타킹 유행중 가장 획기적인 것은 팬티스타킹의 출현이 아닐까 싶다.
그전까지는 스타킹의 윗부분에 넓적한 헝겊 고무줄이 붙은 밴드스타킹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것은 고무밴드가 허벅지 부분을 몹시 압박해서 아플뿐 아니라 오래 걸어다니면 자꾸 흘러내려서 자주 치켜올려야 하는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긴 스타킹을 가터벨트나 거들에 달린 고리에다 일일이 고정시켜야 했는데 바쁜 아침 시간에는 특히 번거로운 노릇이었다.
이때 구세주처럼 출현해서 만천하 여성들을 거들과 양말대님의 속박으로부터 구출해준 것이 바로 팬티스타킹이다.
미니 등장이전에도 물론 팬티스타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러 외국제가 암시장에 흘러 나와 이미 신고있는 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우리 메이커에 의해 생산된 것이 대량으로 소비되기 시작한것은 미니의 유행과 함께라고 보는편이 타당하다.
자꾸 짧아져서 손바닥만한 스커트 속에 양말대님을 맨다거나 거들의 고리를 감출 수도 없었으므로 팬티스타킹의 출현이나 유행은 필수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스타킹이 패션의 새로운 액세서리 구질을 톡톡히 할 수 있는 것도 봄·여름·가을 세계절뿐, 수은주가 영하를 오르내리는 겨울에는 거미줄같은 스타킹 한장에 다리 전체의 보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래서 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미니가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한 69년 겨울부터 롱부츠패션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해마다 추운 겨울이면 애용되던 발목높이의 앵클부츠나 기껏 종아리 중간까지 오던 보온용 장화가 아니라 짧게는 무릎 바로 아래까지의 세미롱부츠부터 아예 거들의 고리에 고정시키는 스타킹 스타일의 완전 롱부츠에 이르기까지 그 길이는 물론 디자인이나 소재빛깔도 다채로왔다.
그러고 보면 『부츠 안 신으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 70년대말의 부츠유행은 미니 시대의 부츠유행으로부터 꼭 10년만에 다시 유행을 본 셈이다.
그러나 60년대말의 부츠패션이 오래 신고있다 벗으면 부츠의 솔기 자리가 종아리에 뚜렷이 남을만큼 지나치게 곡 맞는 것이었던데 비해 70년대말의 부츠 경향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루스피트라고 해서 장화목부분이 벙벙하게 넓어 종래 부츠가 스타킹형이라고 하면 최근의 유행부츠는 버선을 벗어놓은 모양을 방불케 했다.
반면에 구두 굽부분은 정반대 현상을 보여서 60년대말엔 굵고 넓적하던 것이 70년대말엔 높고 뾰족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유행이란 10년 혹은 15년정도 주기를 두고 반복되는 것같고 십년전에 벗어두었던 미니시대의 부츠를 십년뒤에 다시 꺼내 신을수 있을 것 같지만 70년대말에는 그때대로의 뭔가 시대의식같은 것이 가미되고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똑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된다.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두고 『장사꾼이 물건 팔아먹기 위해 만들어 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마디로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패션이란 어디까지나 그 시대정신의 반영이란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더큰것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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