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아마추어리즘의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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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들썩거리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고강도 규제의 약발이 먹혀든 모양이다. 강북에 사는 사람으로서 적잖이 위안이 된다. 강남 아파트값이 끝 모르고 치솟을 땐 솔직히 배가 아팠다. 내 집값은 움쩍하지 않는데 강 건너 마을에선 자고 나면 "억! 억!"하고 올라가니 앉아서 당하는 느낌이었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 하락이요, 손해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단다. 강남은 지금 억지로 눌러놔 잠시 주춤거릴 뿐 오래지 않아 또 오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쪽으로 가려는 수요는 계속 느는데 공급을 틀어막아 놨으니 값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판교신도시 하나로는 넘쳐나는 수요를 담아내기에 턱도 없는 데다 강남 재건축을 묶어놔 결과적으로 강남 주택의 희소가치만 높여준 꼴이다. 수도권에 그만한 신도시를 여러 개 건설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강남 맛'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소득세.양도세를 올려봤자 강남 집값 잡는 데는 별 효과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집값에 반영될 테니까. 정작 허리가 휘게 된 쪽은 여타 지역이에요. 그쪽도 똑같이 세금이 올랐으니. 소외계층을 배려하겠다는 정책에 소외계층만 더 힘들게 된 거죠." 전직 고위 관리의 해설이다.

이 정부 들어 발표된 부동산대책이 무려 20여 차례. 그런데도 강남 아파트값은 천장만큼 올랐고, 지금도 골치를 썩인다. 이젠 땅값까지 춤춘다. 그 허덕거림을 지켜보며 전문가마다 혀를 찬다. 의욕은 좋으나 원칙과 일관성이 없다. 터져서야 뒤쫓아가는 대증요법만 난무하니 원님 행차 뒤 나팔 불기다. 후유증도 적잖고 오히려 병만 깊어진다. 한마디로 손놀림이 서툴다는 것이다.

부동산정책뿐이 아니다. 역점을 둔다는 사업과 정책들이 한결같이 미덥지 못하고 불안하다. 50만 명 규모의 행정수도 건설로 과연 수도권 집중이 얼마나 해소될지. 수도권을 분산시키겠다면서 한편에선 수도권 규제를 푸는 대책회의가 열리니 이 모순은 또 무엇인지.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은 결코 안 된다던 총리의 호언까지 자고 나면 뒤집히는 판국이라 믿을 수가 없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려면 국민 가슴속에 스며들어 뿌리를 내려야 할 터인데, 설득력을 잃고 공중에서 헤매는 형국이다. 이 정부 출범 때부터 우려되던 아마추어리즘. 지금 그 실체를 목도하고 있는 것인가.

자세도 문제다. 감사원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 감사 결과는 검찰 수사를 통해 대부분 뒤집히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과 민간인 몇 명의 단순 사기극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사이 핵심인물은 해외로 튀었다. 특정인 봐주기 감사였느냐는 비판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과연 직업적 프로정신으로 눈을 부릅뜨고 철저하게 매달렸는지 돌아볼 일이다. 감사원은 그 뒤 지자체 공무원의 복지부동 사례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의 복지부동은 누가 감사해야 되나.

외교안보 쪽 전문가들의 걱정은 더 깊다. 동북아 균형자도 좋고, 자주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 실력을 키우며 다져 가면 될 일이다. 실속도 없이 밖으로 대고 외쳐대니 비웃음만 산다. 오랜 동맹 미국을 콕콕 자극하여 저들이 멀어지거나 떨어져 나가면 그게 민족 자존심의 승리냐고 묻는다. 남북 차관급 회담의 어정쩡한 합의내용도 그렇고 그 틈바구니로 평양행사에 참석하겠다며 다투듯 몰려가려는 모양새도 그렇다. 느긋한 노련미보다는 조급함이 앞서는 아마추어의 냄새가 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모든 걸 다 꿰는 전문가일 수는 없다.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최고의 전문가들을 대접하고, 그들로 하여금 머리를 맞대 최상의 방책을 내놓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일이야말로 국가관리의 지혜다. 그걸 잘해내야 프로 정치가요, 진정한 지도자다. 그러자면 포용력과 균형감각, 그리고 상식적이고 모나지 않는 품성이 요구된다. '대선 기획의 최고 경험자'나 싸움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자만이 넘쳐 아예 전문가에게 묻지도 않거나, 어느 한쪽의 전문가 이야기만 듣고 칼을 휘두른다면 그만큼 사고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능숙한 간호사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특히 여자 환자에게 정맥주사를 놓을 때 서툰 간호사들은 혈관을 찾지 못해 바늘을 이리저리 쑤셔대며 쩔쩔맨다. 어휴-, 생각만 해도 겁난다. 한 방에,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놓는 프로 간호사. 국민이 원하는 정부의 모습이다.

허남진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