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에게 배우는 오피스 처세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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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주인공 유나는 후배들에게 ‘실력, 의리, 인간성’ 모두를 갖춘 존경받는 선배다. 직업이 소매치기라는 점만 빼곤 완벽한 유나에게서 배워야 할 직장 내 처세술.

뒷방 신세라도, 어른은 어른이다

유나의 집은 건달 출신이자 ‘차차차 콜라텍’ 한 사장의 다세대 주택.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소매치기 유나를 비롯해 미장이, 백수, 유부남 킬러 등 직업이 변변치 못하다. 그중 한 사장이 모시는 ‘도끼 형님’은 관절까지 망가진 뒷방 노인네로 잘나간 시절에 비하면 초라한 노년의 삶을 산다. 유나를 비롯한 객식구들은 삶은 변변찮아도 어른은 깍듯하게 모신다.

▶ 능력 없는 상사의 뒷담화는 할지언정,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라.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한참 후배라면 상사를 얕잡아보지 말자. 뒷담화를 하되, 어른인 상사 앞에서도 당당히 눈 마주칠 수 있을 정도에서 그치자. 지금은 능력 없어 보여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에게도 잘나갔을 시절이 있었다. 또 조직 내에서는 어른에게 깍듯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평판이 좋다.

직업의식을 가져라

“물건 잃어버린 사람에게 잔인한 상처는 주지 말자.”유나의 소매치기 철학이다. 미안한 마음은커녕, 잔인한 만행까지 저지르는 강도는 소매치기보다 나쁘다. 피나는 노력으로 기술을 익힌 이유는 피해자에게 들키지 않고 싶어서다. 들키면 미안하고 무안하니까.

▶ 하물며 범죄자이자 하류 인생인 소매치기에게도 직업에 대한 철학이 있다. 직업의 목적과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자에겐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부심이 있으면 일을 위한 노력은 저절로 따라온다. 직업을 가진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다. 늘 일이 하기 싫다? 아무리 일을 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부심을 찾지 못한다면 자신의 직업을 심각하게 고려하라.

말은 되도록 아껴라

극 중 유나의 대사는 적다. 용건만 간단히, 전달하고 싶은 의사를 명확하게 전한다. 구구절절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신세 한탄도 쉽게 하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은 소문도 직접 확인 후 도움을 요청할 때 사건을 정리해 말한다.

▶ 직장 생활을 하는데 쓸데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수다는 있을지언정, 허무맹랑한 소리는 삼가라. 첫째 신뢰도가 떨어지고, 둘째 성숙한 어른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짜 어른은 말을 통제할 줄 안다. 존경받고 싶으면 입단속부터 하라. 후배를 훈계할 때도 말을 줄이고 경청하는 것은 코칭의 기본 원칙이다.

부정하게 행동한 상대에게 동정심을 보내지 않는다

함께 일하려던 소매치기 후배를 믿었던 유나. 알고 보니 후배는 남자친구와 함께 짜고 부정을 모의한다. 눈썰미 좋은 유나와 주변 소매치기들은 이상한 낌새를 채고 후배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거짓이 탄로 난 후배를 유나는 가만두지 않는다. 소매치기에게 생명인 손을 다치게 하는 보통의 처벌을 넘어, 유나는 얼굴에 상처를 낸다. 극 중 유나는 룰을 어기고 배신한 후배들은 면회조차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 회식 때 성추행, 성희롱에 가깝게 치근덕거리는 남자 직원, 회사 법인카드를 괜찮다며 사적으로 이용하는 동료 직원, 사무실에서 개인 물건을 훔친 어처구니없는 후배 등 명명백백 잘못된 행동을 보이는 사람에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행여 그들이 자신에게 동조해줄 것을 기대한다 해도 말려들 필요조차 없다. 직장 생활에서는 가급적 이러한 이들에겐 자신의 사생활과 속마음을 노출하지 말고 상대하지 않는 편이 상책이다.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공을 떠벌리지 않는다

유나는 작업에 성공하고서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워낙 무던한 캐릭터에 우울한 정서가 있지만, 그것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면몰수’, ‘기술발휘’, ‘소원성취’로 통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기술발휘로는 최고라 해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실수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주변의 칭찬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 한 번 잘했어도, 두 번째 미끄러질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력 감퇴와 둔해지는 통찰력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 부지런해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다. ‘겸손’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을 좋은 사람의 덕목이다. 노력에 따른 결과, 결과에 따른 보상이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불경기인 요즘 같은 때엔 노력할 기회도 보상도 적다. 그래서 다들 마음이 팍팍하다. 자신의 팀에서 에이스라고 우쭐대지 말자. 동료들이 겉으론 웃고 있을지 몰라도 속은 다른 마음일 수 있다. 어쨌거나 겸손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치사하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전과 따지는 사람 제일 싫어.” 집주인 한사장은 전과 4범, 소매치기 유나는 전과 3범 등 극 중에는 전과가 있는 다수의 인물들이 출연한다. 타인과 다툼이 있어 경찰서에 끌려가면, 주변에 신원 보증을 해줄 사람이 마땅하지도 않다. 한 사장은 직업이 검사였던 처제에게 결혼하기 전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또 아무도 실제 직업을 몰랐던 유나는 집안 식구들에게 정체가 탄로 난다. 직업의식 투철한 유나는 자신의 과거와 직업이 싫지 않다. 다만 색안경 끼고 자신을 다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을 뿐이다.

▶ 소문 무성한 직장 동료를 새롭게 맞이했을 때,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물론 전 직장에서의 과오를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낙인 찍어 상대하기엔 갈 길이 멀다. “보나 마나 일 처리가 엉망이겠지”라고 치부한다면 실제로 부실하게 처리할 가능성도 높다. 상대에게 긍정을 기대할 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이럴 때 노리는 것이다. 사람의 습성은 잘 변하지 않지만, 커리어의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변화에 대한 기대는 과거에 빗대 무조건 비관하기엔 이르다. 상대에게 시간을 주고 기대하는 편이 좋다.

용서는 쿨하되, 신중하게 하라

그렇게 다시는 안 볼 것 같던 후배 화숙을 유나는 용서한다. 화숙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죄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용서를 덥석 물진 않는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뿐, 완전히 믿지 않고 또 자신이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인지시킨다.

▶ 연차가 높아도 구제 불능인 사람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할 리는 드물다. 다만 연차 어린 후배들은 다르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미숙함이나 변덕스러움을 참아줄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후배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후배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주체를 명확하게 하고, 본인의 의사를 단호하고 또렷하게 밝혀라. 이를테면, “이런 방식은 팀장이 좋아하지 않아”가 아니라 “나는 이런 방식이 싫고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의리는 반드시 지킨다

유나에겐 의리가 있다. 함께하기로 한 행동은 끝까지 함께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다. 소매치기가 범죄고 하찮아 보여도, 오랫동안 연마한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는 그들 사이에도 몇 가지 룰이 있다. 소매치기 팀별로 정해진 구역이 있고 다른 팀 영역에 침범하지 않는다. 또 대개 단독 범행이 아닌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약속과 신뢰는 그들 조직을 존재하게 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 직장 내 의리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기본 처세술이다. 본인의 일이 모두 끝났더라도 주변 동료들을 살펴 퇴근하고, 적정선에서 도울 일이 있는지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묻는 행동은 환영받는다. 동료 간에 약속은 꼭 지키고 도움을 청해오는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한 팀이라는 결속감은 본인의 일 밖 처세에서 빠르고 단단하게 모을 수 있다.

불길한 소문은 귀로만 듣는다

유나가 사는 집의 세입자들 대부분은 직업이 변변찮고 삶도 불안하다. 그래서 늘 바람 잘 날이 없다. 워낙 눈과 귀가 빠른 유나는 나쁜 일을 도모하는 모의를 잘 캐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 가까운 지인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혼자서 알아보고 도와줄 대책을 세운다.

▶ 썩은 사과 이론이 있다. 부정적인 말로 조직의 물을 흐리는 경우다. 신입이라면 소문으로 들은 나쁜 소식을 타인에게 전하지 마라. 연차가 높은 팀장이라면 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조용히 알아본다.

약한 자를 그냥 보지 않는다

소매치기는 나쁘지만, 세상에 더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많다? 자기 직업의 정당함을 흙탕물에서 찾는 유나라도, 그녀가 괜찮은 인간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인정 때문이다. 힘없는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볼 줄 안다. 이모에게 매 맞으며 도둑질을 하는 어린 소녀, 후배들이 소매치기한 돈이 하필 아들 수술비라는 할머니 등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 팀원들 모두가 같은 처지일 수 없다. 각기 다른 연차에 다른 난이도의 업무량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다. 기댈 곳이 필요한 계약직 사원들이나, 일이 서투른 신입 등 자신보다 처지가 좋지 않은 사람을 살펴야 한다. 감정은 부메랑과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베푸는 인정은 어떻게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한지희 슈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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