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79대 0으로 져도 행복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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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6일 부탄의 타쉬 노르부(왼쪽)가 경기를 마친 뒤 상대 이란 선수와 인사하고 있다. [인천=오종택 기자]

부탄·몰디브·동티모르.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나라들이다.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빠짐없이 참가한 부탄은 이번 대회에 복싱·양궁·태권도 등 7종목에 16명이 참가했다. 몰디브는 140여명, 동티모르는 30여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대회 중반이 넘어는 가운데 이들에게서 아직 메달 소식은 없다.

 지난 26일 복싱 라이트헤비급 16강전에 타쉬 노르부(26·부탄) 선수가 출전했다. 노르부는 이란 선수에 맞서 분전했으나 두 차례 다운을 당하며 0-3으로 패했다. 하지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노르부는 링위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合掌)하는 불교식 인사를 했다. 박수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랙숌짭치!(부탄어로 ‘잘했어’라는 뜻)” 동료들은 노르부의 땀범벅이 된 등을 두들겨줬다.

 히말라야 산맥 인근에 있는 부탄은 한반도 5분의 1 크기, 인구 70만 명의 작은 나라다. 국민총생산(GNP)이 아닌 국민행복지수(GNH)를 국가 정책의 목표로 삼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행운의 상징인 첫 눈이 내리면 전국 모든 학교와 관공서가 휴일이다.

 부탄 운동 선수들과 국민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기쁨보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부탄 선수단장 카르마 펜덴(42)은 “메달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다(웃음). 하지만 메달을 반드시 따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대회를 즐기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몰디브 여자축구 선수들이 지난 21일 한국에 0-13으로 패한 뒤 인사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몰디브 여자배구팀은 지난 26일 인도와의 8강전 진출전에서 54분 만에 0-3으로 졌다. 인도가 75점을 내는 동안 몰디브는 30점에 그쳤다. 신나게 응원하던 모하메드 아니스 몰디브 선수단장은 “괜찮아요. 정말 잘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남아시아의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섬 몰디브는 1990년 대회부터 개근했다. 이번에는 역대 최다인 142명 선수를 보냈지만 메달은커녕 상상하기 힘든 점수차 패배로 화제가 되고 있다. 몰디브 여자축구는 3경기에서 38실점에 무득점이었다. 여자 핸드볼은 더 처참했다. 일본에 0-79, 우즈베키스탄에 7-57로 무릎을 꿇었다. 두 팀 모두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데뷔했다.

 섬나라로 몰디브 국민 39만4000여명이 헤엄치기는 최고라는데, 수영 종목에서 꼴찌가 나왔다. 남자 자유형 400m 예선 1조 꼴찌를 한 무발 아잠 이브라힘(14)은 5분29초40로, 중국 쑨양(3분43초23)보다 1분46초나 늦게 들어왔다. 그래도 이브라힘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아니스 단장은 “몰디브에는 수영장이 없다. 우린 바다에서 훈련을 하는데 수영장 물과 달라 선수들이 평소보다 더 못하는 것”이라며 “바다 수영 종목이 있다면 우리가 금메달이다”고 웃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수영 지도자를 파견해 몰디브를 돕고 있다.

 몰디브는 소국이다. 국가 수입의 90% 이상이 관광업으로 물자가 풍족하지 못하다. 생업에 몰두하느라 변변한 스포츠 시설이 없다. 그래도 스포츠에 대한 사랑은 뜨겁다. 이번 대회도 생중계는 없지만 몰디브 사이트 내 뉴스들이 대부분 아시안게임 소식을 담고 있다.

인천=박소영·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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