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중서 『문제학생』재적처리|백지자퇴원서 미리 받아|날자만 없이 보호자 도장 등 받아둬|말썽대면, 자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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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최근 서울시내 일부 중·고교에서 이른바 문제 학생들로부터 백지 자퇴원서를 받고있어 교육계에서 물의를 빚고있다. 백지자퇴원서는 학교측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거나 과거에 한번 말썽을 일으켰던 학생들에 대한 날짜가 기재되지 않고 학생본인 및 보호자의 도장이 찍힌 자퇴서로 이를 사전에 받아 두었다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퇴날짜를 소급하여 적어 넣은 뒤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스스로 학교를 떠난 것처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최근 들어 문제학생수가 늘고 이에 따라 상부교육기관이 담당교사들에 대해 책임을 엄격히 묻고 있어 비교육적 방법인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학부모들은 학생선도보다는 책임회비에 급급한 처사라며 비난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동에 있는 Y중학교는 11일 동안 가출했다가 돌아온 동교 1학년 Y모(14) K모(14)군 등 2명에 대해 미리 받아 두었던 자퇴원서를 근거로 자퇴처리 했다.
Y군의 어머니 신덕임씨(37·서울원지동238)에 따르면 개학을 하루 앞둔 지난달 23일 하오 두 소년이 『직장을 구해 어려운 집안살림을 돕겠다』 면서 가출 해 개학날 두 집 부모가 담임교사를 찾아가 상의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학교측은 Y군 집에 급우를 보내 『담임선생이 Y군과 보호자 도장을 가져오리 한다』고 했다는 것.
신씨는 도장을 가지고 다시 학교에 갔더니 담임선생이 Y군이 돌아오면 처리할 것인데 먼저 받아두는 것이라며 날짜도 적혀 있지 않은 자퇴원서를 내 보여 영문도 모른 채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학급이 다른 K군의 경우 가출 6일째인 지난달 29일 K군의 아버지 근무처로 찾아가 자퇴원서에 제출도장을 받아갔다는 것.
Y군은 신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대신 아파트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오던 어머니 신씨가 지난달 초 교통 사고로 합께 몸져눕게 되자『공부를 포기하고서라도 돈을 벌어 집안을 돕겠다』며 친구인 K군과 함께 집을 나갔던 것.
두 집 부모는 가출 11일 만인 지난 3일 서울중화동 모 가방공장에서 일하는 두 소년을 찾아내 학교로 데리고 갔으나 학교측은『이미 결석기간이 1주일로 규정된 퇴학 기한을 넘어 자퇴원서가 수리됐다』 며 등교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들 소년의 부모들은 학교측이 작성한 날짜 없는 자퇴원서를 내보이면서 아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을 자퇴 아니면 퇴학 처분밖에 없다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면서 『비록 가출한 아이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해도 가출 2∼3일만에 이미 퇴학 방침을 굳히고 그 같은 백지 자퇴원서를 받아 내는 것이 학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분개했다.
서울 성동구 A고교의 경우 1년 전부터 문제 학생들에게 이 같은 백지 자퇴원서제도를 적용, 학생들에게 심한 중압감을 주고 있다.
이 학교 2년 김모군(16)은『주로 한 두 번 정학이나 근신 처분을 받은 학생들에게 그 같은 날자 없는 자퇴원서를 미리 받아놓는다』고 말하고 『과거에는 문제 학생일 경우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를 받았으나 얼마 전부터는 아예 보호자를 불러 자퇴원서에 도장을 찍게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백지자퇴원서 사례에 대해 Y중학교의 학생지도주임인 윤모 교사(49)는『학생이 외부에서 문체를 일으킬 경우 교육 당국으로부터 교사들은 감봉·면책 등 각종 책임 추궁과 징계를 받는다』 고 밝히고 비록 비교육적인 줄은 알기만 지금과 같은 교육 여건 하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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