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중화학투자로 멍든 폴란드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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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후유럽대륙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적 난국이 현재 폴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다. 계획경제 아래서 중화학공업에의 무리한 투자 등 폴란드 정부의 오도된 경제정책이 빚어낸 파탄은 폴란드 자체의 장래는 물론, 동구권의 국제정치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서방국가들에 대한 상무불이행으로 국제 금융가에서도 근 10년만의 위기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근자 포천지가 개관한 폴란드경제의 실상을 옮긴다.
지난 3년 간 폴란드의 국민총생산은 거의 4분의1이 줄었다. 올 들어 다시 17%나 감소한 산업의 생산은 아직도 그 바닥을 모른다.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도 1백% 가동해야 겨우 기본생필품을 댈 수 있는 국내 산업의 가동률은 75%선에 머물고 있다.
농가는 가까스로 입에 풀칠할 정도면 다행이다.
이 같은 경제적 파탄은 전적으로 폴란드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것. 숙련된 노동력이 있고 넓고 비옥한 농지가 있으며 게다가 풍부한 광물자원까지 갖고 있는 폴란드의 공산지도자들이 그 동한 해놓은 것이라고는 농업과 경공업을 거의 빈사상태로 몰아넣으면서 2백70억 달러 라는 거액의 돈을 서방세계에서 빌어 수익성이 극히 의심스러운 중공업분야에 맹목적으로 쓸어 넣은 것뿐이다.
폴란드정부의 중공업 투자가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는지를 보자.
한 예로 폴란드정부가 1천6백억즐로티(약50억달러)를 투입하여 건립한 제철공장의 연산능력은 1천만t.
미국 내 모든 제철공장이 지난해 생산해낸 철강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더하여 소련국경 금광석을 운반하기 위한 철도건립에 10억즐로티가 더 투입됐다. 그러나 현재 이 제철공장은 연간 겨우 4백만t의 철강을 생산할 뿐이어서 투자수익률은 보잘 것 없다.
바르샤바근교의 한 트랙터공장은 더욱 한심하다. 10억달러가 투입된 이 공장은 연간 7만5천대의 트랙터를 생산한다는 의욕적인「계획」과는 달리 현재 불과 5백대를 만들어낼 뿐 이다. 게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이 트랙터의 부품들은 거의가 서구에서 수입 해야하는 것이고 따라서 트랙터가격은 터무니없이 높다.
이 공장의 부품 국산화 대체를 위해서는 8억달러가 더 투입돼야 한다.
이 같은 경제적인 난센스는 폴란드의 화학·전자·자동차등 거의 모든 주요산업에 널려있다.
한마디로 서구의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개방이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 해야하는 것처럼 폴란드 경제의 서구의존도를 턱없이 높여 놓은 반면, 수출은 전혀 늘지 않아 국제수지상태는 악화 될 대로 악화 됐고, 따라서 부품을 들여 올 수 없게되자 거액이 투자된 공장들은 조업을 중단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난국을 수습하려는 폴란드정부는 급한 대로 임금을 현 수준에서 동결시키고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가격과 식료품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등 단기적인 처방을 쓰고 있으나 한계점에 다다른 계획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없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점을 인식한 폴란드정부도 자유 경제체제로의 부분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나 TV나 냉장고의 생산업체가 단 하나뿐인 폴란드와 같은 경제체제에서 경쟁을 통한 산업효율의 향상이 얼마만큼이나 이루어질지도 또한 의문이다.
그러나 이 처럼 구조적인 취약성을 안고있는 폴란드 경제에도 돌파구는 있다.
노사협조를 바탕으로 한 생산성의 향상이 바로 그것. 레닌조선소의 성공적인 사례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레닌조선소는 올 들어 35%의 생산증대를 이루었고 또 3억달러 상당의 조선수출을 기록했다. 더구나 이 같은 도약은 주 조업일을 6일에서 5일로 단축하면서였다.
비결은 단 하나, 노사간의 거리감을 줄임으로써 종업원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성취동기를 유인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매주 정기적으로 관리자와 종업원대표들의 대화 채널을 갖고 종업원 대표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시키며 회사측의 사정을 자세히 알려주는 매우 간단한 방법을 폴란드 경제는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샘이다.
이념으로 경직된 경제체제 위에서 무모한 투자에 막대한 외채를 끌어댄 폴란드가 뒤늦게나마 구조적인 탈바꿈과 함께 노사협조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 눈뜨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식적인 귀결일수 있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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