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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아내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여필종부(여필종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들의 행동지침(?)처럼 사용되던 이말도 지금은 잘못 사용했다가는 자칫 「구식사람」으로 몰려 남의 코웃음을 살 정도로 세태는 많이 변했다.
전통적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무너져 가는 와중 속에서 간혹 요즘 여성들은 잘못된 여성상위시대의 극에 서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몇 해전 서울봉천본동에서 있었던 남편 토막 살인사건등 가히 부인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끔찍한 사건들이 잇달고 있다.
바로 엊그제 경북성주군에서는 40대 부인이 평소 주벽이 심한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소주에 농약을 타 남편과 주민2명을 숨지게 했다.
또 남편이 외국에서 땀흘려 번 돈으로 카바레 여관을 들락거리며 정부와 놀아난 춤바람 난 유부녀가 철창신세를 졌다.
전통의 사슬에서 풀려나 방황하는 현대판 「노라」가 우리주위에는 분명 너무도 많다.
바로 이 때문에 목사의 꿈을 키우며 신학교에 다니는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쓰레기장에서 폐품을 줍다 불도저에 깔려 숨진 이기순씨(30)의 이야기는 한층 더 가슴아프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지도 모른다.
흰 횟가루를 뒤집어 쓴듯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삶과 꿈을 줍는 이씨의 얼굴에는 항상 기쁨과 행복감이 넘쳤다고 한다.
그녀의 꿈은 남편 서씨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목사」가 되는 것.
그녀는 「달동네」 라는 말이 차라리 사치스러운 난지도 판자촌 5평짜리 무허가 판잣집과 하루 3천∼4천원 벌이가 재산의 전부였지만 이 꿈을 가꿀수 있기에 조금도 불평이나 후회가 없었다.
남이 버린 것을 정직한 마음으로 주워 일한 댓가만큼의 돈을 벌 수 있기에 부끄러움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장사를 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의 속성』이 싫었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사업실패로 실의에 빠진 남편을 설득, 영적인 새삶을 갖도록 목사의 길을 적극 권고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편의 훌륭한 내조자로, 교회 집사로, 주일학교 여선생으로 1인3역을 해낸 이씨는 결국 삶과 꿈을 일궈온 쓰레기더미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분명 못다한 아내의 꿈을 간직한 채 떠났지만 방랑하는 현대판「노라」들에게 큰 교훈을 심어 주었다. <정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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