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CEO] 英 할인점 '테스코' 테리 리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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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4월 초 영국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이라크 전쟁과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여파로 세계는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인천 공항뿐만 아니라 런던 히스로 공항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후 1시임에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 주변의 할인점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런던 외곽지역인 벡턴에 있는 할인점 '테스코'매장에는 '세인즈베리(테스코의 경쟁업체)의 할인 쿠폰도 받습니다''즉석 여행자 보험을 판매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할인점 간 경쟁이 어느 정도 치열한지를 이곳은 보여주고 있었다.

'영국 유통업계 1위''유통업체로는 세계 처음 바코드 도입' 등의 수식어가 붙는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 본사를 찾았다. 이 회사의 테리 리히(47)회장은 업계에서 말을 아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이 매출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나.

"전반적으로 매출 변화는 없었다. 다만 전쟁 발발 후 2~3일 동안 고객이 구입한 상품의 종류에 변화가 있었다. 생수.통조림.배터리 등의 매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며칠 지나지 않아 안정됐다."

-최근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는데.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이 전년보다 11.5% 증가한 2백86억파운드(약 54조3천4백여억원), 영업이익은 14.7% 늘어난 14억1백만파운드(약 2조6천6백여억원)에 달했다. 6년 전보다 매출은 91%, 영업이익은 87% 증가했다. 영국 내에서만 3백30만명의 새로운 고객이 생겼으며 그로서리(식료잡화).온라인 사업(지난해 매출 4억4천7백만파운드)을 세계 최대 규모로 발전시켰다."

-사업이 성공적이었는데 비결이 있다면.

"간단하다. 고객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고객을 위한 가치를 창조하는 데 맞춰져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평생 고객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매주 영국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수인 1천4백만명이 테스코 매장을 찾는 이유다."

-유통업체 1위를 지키기 위한 전략은.

"테스코의 성장전략은 영국 내 사업역량 강화, 비식품 부문 개발, 유통서비스 확대, 해외사업 강화 등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충실히 실행하는 것이다."

-영국 테스코 매장에서 자사 상품(PB)의 매출비중이 40%에 달하고 있는데.

"PB매출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테스코의 PB상품 개발은 한국 협력업체가 세계적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본다. 영국 테스코는 고가의 비식품 부문 PB를 최근 개발했으며 한국 삼성테스코도 의류 등 비식품 PB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비식품 PB개발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확신한다."

-주요 타깃층이 있나.

"테스코는 모든 소비자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매업태를 갖고 있다. 우리는 한 계층만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 계층과 고소득 계층을 모두 아우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영국서 업체 간 가격경쟁이 치열한데.

"1996년부터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 고객에게서 번 돈을 되돌려 준다는 차원에서 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가격을 깎아준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내렸다. 강력한 경쟁업체는 가격인하에 따라왔으나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요즘에는 고객이 경쟁업체의 할인 쿠폰을 가져와도 값을 깎아준다. 7년 동안 가격을 내리니 테스코의 제품 가격이 일부 업체보다 25% 가량 쌀 정도가 됐다."

-최근 한국에서 삼성테스코가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할인점 간 가격경쟁이 치열해졌는데.

"경쟁은 가격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성패는 어느 업체가 고객을 생각하고, 가장 효율적이냐에 달려 있다."

-해외사업에 대해 말해 달라.

"현재 테스코 전체 매출에서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부분은 18%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외부문의 매출과 이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영국 유통시장은 성숙해 있는 반면 세계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유망한 지역이라고 본다. 한국 테스코도 잘 발전해 나갈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대형할인점 형태만 운영하고 있다. 다른 형태에 진출할 계획이 있나.

"일단 한국에서 우리가 세워 놓은 하이퍼마켓 계획을 달성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 밖에도 다른 형태의 점포 개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작은 형태의 하이퍼마켓과 수퍼마켓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 투자 및 중국.일본 진출 계획은.

"한국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상세한 계획을 밝히기는 어렵다. 또한 현재 중국과 일본 진출을 위해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역의 허브를 선정한다는 것은 좀 이른 감이 있다."

-할인점이나 수퍼마켓이 공급자(농민 등)를 희생시켜 과도한 이윤을 남긴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 않다. 어떤 소매업체도 공급업자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소매업체는 공급업자를 번창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급업자는 자신의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빨리 변하는 소비자의 수요에 맞는 제품도 제공할 수 있다."

런던=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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