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조개 등 패류 무진장 「잠수부섬」우도|진해시 웅천2동 앞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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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진해시 중심가에서 진해만을 끼고 부산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20여분쯤 달리면 통통배 10여 척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졸고있는 웅천2동 명동마을에 닿는다.
선창에 서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 대여섯 개의 작은 섬들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숨바꼭질을 하고있다.
배를 타고 섬과 섬 사이를 빠지면서 뒤돌아보면 암청의 바닷물 빛과 녹색의 섬 숲이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이들 섬 중에서 한가운데쯤에 떠있는 게 우도. 위꼬지섬·아래꼬지섬·초리도 등은 모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이고 우도에만 50가구 2백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면서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볼까 말까한 남해의 외딴섬 우도-.
피조개·개조개·바지락이 무진장으로 묻혀있고 몇 십 년 전부터 이를 캐는 속칭 「모구리」로 불리는 잠수부들이 많아 인근 해역에서는 「모구리 섬」으로 유명하다.
『우리 섬이 모구리섬이 된 데는 섬 주위 바다 밑에서 나는 자연생 개조개가 일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캐내려고 처음엔 무허가 잠수기들이 몰려든 게 시작이었어요.』
어촌개장 장영배씨(42)는 우도의 개조개하면 알이 굵고 빛깔이 고운데다 살이 단단해 국내보다 일본사람들이 한술 더 떠 사족을 못쓴다고 한다.
『70년대만 해도 간이잠수기까지 동원되어 바다 밑의 보물을 캐냈습니다. 그러다가 76년 당국에 의해 불법어로로 모두 금지되었어요.』
그러나 배운 게 무슨 짓이라고 달리 먹고살 방도도 없고 해서 감시의 눈을 피해 잠수어업은 계속되었단다.
『지도선에 붙잡혀 입건도 숱하게 되고 벌금도 많이 물었지요. 하지만 바다 밑에서 돈은 꿈틀대고, 잡지는 못하고…생각다못해 충무에 나가 유허가 잠수기1대를 사들여 왔지요.』
어업조합 이사 장금호씨(49)는 이때부터 우도는 차츰 잠수부들이 모이는 잠수부 섬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섬의 잠수기 배는 7척. 척 당 2천3백 만원을 훗가, 1억6천 여 만원의 마을재산을 이루고 있다.
잠수기어선 한 척에는 대개 6명이 승선, 작업을 한다. 그러나 정작 바다 밑에 들어가 패류를 캐는 잠수부는 2명뿐이고 선장 1명, 나머지 3명은 잠수부의 보조원이다.
잠수부가 물밑에 들어가 있는 동안 공기를 계속 공급해주는데 4∼5년 전까지만 해도 2명의 선상 작업원이 손으로 펌프질을 하는 수동식으로 위험 부담이 높았었다.
지금은 모두 콤프레서로 공기를 불어넣어 그런 위험은 없을뿐더러 바다 밑 잠수부와 대화가 가능한 통신시설까지 갖추어져있다. 다만 콤프레서의 발동이 꺼지지 않도록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철칙이다.
이 섬의 잠수부 경력은 최하 10년에서 20년 정도.
『자맥질에 관한 한 도가 튼 사람들이지요. 물 밑 15∼20m에서 작업을 하는데 한번 들어가면 오줌이 마렵기 전엔 3∼4시간이나 잠수하고 있어 강인한 체력,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잠수부 15년 경력의 김기출씨(37)는 안방에서 성냥 찾기 보다 바다 밑에서 개조개 찾아내기가 훨씬 쉽다고 한다.
잠수부 1인당 한달 평균수입은 30만∼50만원. 대개는 6개월 분으로 2백만∼3백 만원을 선불로 받고 매달 작업량으로 공제해 나가고 있다.
어촌사정으로 월30만원 이상의 수입이면 꽤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잠수부의 평균 작업수명은 40대 초반. 그 이후로는 힘이 달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보조원이나 양식업으로 전환한다.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잠수병. 수압때문에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켜 다리·허리가 칼로 째는 듯이 쑤시고 두통을 일으킨다. 그래서 너나없이 젊었을 때 한밑천 벌어야한다.
7년 잠수보조원에 잠수부노릇 1년째인 장종철군(21)은 1천만 원을 예금했다며 『밥만 먹고 나면 온몸을 뒤집어씌워 꽁꽁 묶어 물 속에 집어던지니 이것도 못할 것이어요』라며 웃는다.
잠수부들에겐 성깔이 있다고 한다. 조금만 기분이 상하거나 마음내키지 않으면 잠수복을 입다가도 훌훌 내던지고 하선해 버린다. 『이것처럼 고독하고 두려운 직업도 없을 거예요. 발끝에 물이 닿았다하면 그 순간 우리들은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겁니다. 이름 모를 해초·물고기가 내 눈앞에 어른거리고 아무소리도 없는 어두운 정적의 세계, 나의 유일한 생명선이 한 가닥 공기파이프 뿐이라 생각하면 자연의 위엄 앞에 내 몸은 오싹 움츠려들지요.』
잠수부 하영수씨(37)는 잠수부들의 신경만큼 날카로운 것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2백 여년 전 인동장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시작 한 이 섬은 주민 80%가 한성받이로 마을의대소사가 한집안 같다. 지난 6월 수확한 피조개 5천여 만원 어치 등 섬의 가구 당 순소득은 3백여 만원. 명동국교 우도분교엔 국민학교 3학년생까지만 다니고 그 이상 중·고등학생은 통학선으로 웅천명동국교와 진해중·고등학교에 다닌다.
장영배씨의 장남이 고등학교 3년 생으로 내년이면 이 섬에서 처음으로 대학생이 나온다.
『교육이나 전기시설 등은 불편이 없지만 무선통신이 하루 두 번 육지와 연결될 뿐 통신이 제일 문젭니다. 또 약국이나 병원이 한군데도 없어 응급환자가 생기면 걱정이지요.』
장씨는 당국에서 양식장 면허만 더 내준다면 마을공동사업으로 상설전화시설을 갖추겠다며 부자 섬을 만들 의욕에 차있다. <우도=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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