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문제 유태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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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것도 나이 탓인지 요즘 친구들끼리 몇 명만 모이면 으례. 화재는 노후의 이야기로 꽃 피우게 마련이다. 모두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열심히 저축하여 친구들끼리 아주 좋은 양로원에 함께 들어가서 살자느니, 또는 친구들끼리 한 울타리에 모여 서로 의지하며 살자느니 하는 서글픈 이야기가 오고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프랑스유학시절의 어느 봄날 주말이었던가, 신부님의 부탁으로 파리교외에 있는 양로원을 방문한 일을 떠올리게 된다. 양로원의 커다란 아름다운 정원에는 배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하얀 2층집은 영화에서나 보던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
그 양로원은 시설이 아주 좋은 아담한 곳으로 l959년 그 당시 벌써 방마다 텔리비전·냉장고·응접세트 등 모든 문화시설이 갖추어진 비교적 부유층의 깨끗한 양로원이었다.
나는 그때 파리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망향 병에 걸려있던 째인지라 현제명 선생님이 작곡하신『고향생각』등 구슬픈 한국가곡 몇 곡을 불렀다.
그때 열렬한 박수로 나를 환호해주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모습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간단한 식사 후에 그들과 나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달에 한번정도, 어떤 분은 1주일에 한번정도 자식들이 방문해준다는 이야기와 어디가 아프다는 호소, 또는 옆방 친구가 며칠 전에 죽어서 슬프다는 이야기 등을 들으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요하면서도 불행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비록 그들보다는 가난한나라이지만 인정 많은 우리한국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얼마나 행복하게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 눈앞에 노후의 문제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풍요한 생활을 누리게 된 우리나라도 이제 세련되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배금사상으로 인정이 메말라 가는 것일까? 아직 우리아들 일영이는 중학교1년생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찍 결혼하여 며느리까지 본 친구들의 노후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듣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겁이 나고 슬퍼지기까지 한다.
「빌헬름·실러」의 시로 된「슈베르트」의 연가곡『겨울나그네』중에『백발』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찬서리가 내려 나의 머리 하얗게 되어 기뻐하였더니 서리가 녹아 다시 검은머리가 되었네…해가 지고 밤이 밝을 때까지 백발의 노인이 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데 나는 꽤 이 긴 여행에도 늙지도 않는지>라고 통탄한 실연한 젊은이의 고뇌에 찬 처절한 노래가 부럽기까지 하다. 모든 예술가들은 자연스러움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친구들이여!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이 세상 물결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지혜를 배웁시다. 사람이 세월 따라 늙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
약력
▲32년 서울출생 ▲서울대음대·동대학원 성악과 졸업 ▲프랑스 파리국립음악원 성악과 수학 ▲프랑스가곡연구합장 ▲현 서울대음대교수·성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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