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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중국의 대일본 복선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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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이런 기사를 가정해 보자. “중국과 일본, 다음 달 베이징에서 양국 정상회담 합의.” 요즘 양국 분위기로 봐서 어림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한국 외교부는 그렇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행보를 꼼꼼히 살펴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바로 이틀 전 일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모두가 항일전쟁 승리 기념식에 참석했다. 전례가 없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파격적 행보여서 해외 언론은 초강력 대일본 경고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 말 없었다. 대신 이날 오후 열린 관련 좌담회에서 시 주석은 “전후 국제질서를 결연히 수호할 것이며 군국주의의 권토중래와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대일 경고를 했다. 대외 공식행사에서는 일본을 배려하고 비공식적으로는 할 말을 하는 완벽한 이중 플레이였다.

함의가 뭘까. 스인훙 런민대 교수의 해석은 이렇다. “과거든 현재든, 평화 때든 전쟁 때든 외교는 항상 샛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올 들어 중국은 겉으론 일본과 ‘전쟁 불사’ 운운했지만 막후에서는 항상 대화의 샛길을 다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4월 시 주석의 특사인 후더핑(胡德平)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도쿄에서 비밀리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난 것이 그 시작이다.

 6월에는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한 오타 아키히로(太田昭宏) 국토교통상과 만났다. 그뿐 아니다. 시 주석은 7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를 직접 만나 양국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

이달에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미얀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접촉하는 등 올해 장관급 접촉만 다섯 차례가 넘는다. 입만 열면 ‘전쟁’을 말했던 군과 해경도 태도가 급변했다. 올해 1~6월 해경선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해역에 진입한 횟수는 40차례. 지난해 동기(94차례)의 43% 수준이다. 4일에는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의 새로운 내각 구성과 관련, “모두 중·일 관계의 수호자와 촉진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우호적 논평을 했다.

 중국에는 “산에 비가 내리려면 바람이 먼저 분다”는 속담이 있다. 누가 봐도 요즘 중·일 관계는 바람이, 그것도 세게 불고 있다. 문제는 한국만 ‘설마’하면서 그 바람을 모른 체한다는 거다. 일본의 역사인식과 위안부 문제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우리 외교가 딱 그렇다. 중·일 화해 후 우리의 동북아 외교 입지를 어디서 찾을지 걱정이다.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