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금융 사기 빠져든 취업준비생들…하루 50만원 벌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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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인터넷에서 구인광고를 본 취업준비생 강모(30)씨는 눈이 번쩍 뜨였다. 고시원에서 살며 가뜩이나 돈이 모자르던 차에 취업준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고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하니 수화기 속 남자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부터 받은 검은 봉지 속 물건을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범죄에 연관된 것은 아닐까"는 의심이 들었지만 강씨는 결국 '고수익 알바'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중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며 전화금융사기를 벌여온 인출책 정모(39)씨 등 7명을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또 대포통장을 운반하거나 개설하는 역할을 한 강씨 등 대학생·주부 7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 등은 주로 중장년의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다양한 속임수를 썼다. 전화를 받은 이가 60ㆍ70대에게는 ‘전화요금 연체’, ‘아들 납치’ 등을 들먹였고, 40ㆍ50대에게는 ‘자금 보호’, ‘개인정보 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돈을 입금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조사 결과 중국에 보이스피싱 본부, 필리핀에는 범행에 사용할 대포통장을 구하는 본부 등을 두고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직적인 범행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이 휴가비나 차례비 등 목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발된 14명 가운데 9명은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광고를 보고 범행에 가담한 취업준비생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기본일당 5만원에 통장 한 개당 3만원 씩 더 받는 방법으로 대포 통장배달을 했다. 나중에는 범행인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가담해 하루에 최고 50만원까지 벌어들인 이도 있다”며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인터넷이나 생활정보지에 실어 범죄에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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