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아들과 똑같이 재산받았다|이조시대 여성의 상속권|숙대 주최 강연서 피터슨씨 (한미 교육 위원 단장)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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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일가 형제끼리 법정 투쟁을 벌이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유산 상속 때 가장 불리한 것은 여성. 다 같은 자식이라도 「여자이기 때문에」 몫이 적으며 특히 결혼한 경우는 더욱 심하다. 현행법상 자녀의 상속 배분은 장남이 1·5, 기타 남자 형제와 미혼 여자가 1, 기혼 여자가 4분의 1의 몫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처럼 불균등한 유산 상속은 본디 우리 고유한 전통이 아니라 17세기 후반 여성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이 발표돼 주목을 끈다.
숙명여대 부설 아시아 여성 문제 연구소 (소장 박영혜) 주최로 10일 하오 2시 숙대 숙연당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여성 강좌에서 「이조시대 여성의 상속권」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한 「마크·피터슨」씨 (동양사·하버드대 박사 과정·현 한미 교육 위원 단장)의 강연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피터슨」씨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아들만이 유산을 상속받게끔 애초부터 관례가 돼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말은 결혼 지참금을 받기 때문에 유산을 따로 받지 못한다는 견해가 일반화된 것은 불과 3백년 전부터 비롯된 얘기. 그 이전에는 딸도 법적으로 완전히 동등하게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1632년 전주 이씨가의 분재 기록을 예로 들었다. 양친 사후 재산 분배를 위해 모인 회합에서 2남 2녀의 자녀는 서열·성별에 관계없이 각각 노비 16명과 같은 양의 농토를 나누어 가졌음을 보여준다.
4자녀 중 장남이 다시 그의 자녀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1662년 기록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권리를 누린다.
이조시대 재산 상속의 차등은 성별이 아니라 신분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견해.
167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씨가의 분재 기록은 신분에 따른 상속의 차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 집에는 7명의 적실 자녀와 3명의 소실 자녀가 있었는데 4남3여의 적자는 각각 노비 30명과 토지를 똑같이 분배받았으나 1남 2녀의 서자는 노비 4명과 더 적은 양의 토지를 분배받았음이 기록돼 있다.
그는 조선조 법은 적실 자녀에게는 각각 1을, 서민 계급의 소실이 낳은 자녀에게는 7분의1을, 노비 계급의 소실이 낳은 자녀에게는 10분의 1만을 주게 끔 돼있었다고 소개했다.
딸만 있을 경우에도 그들이 모두 적실 소생일 경우 동등하게 재산을 상속받았다. 조선초기 딸은 아들과 똑같아 재산 상속 및 증여를 누구에게나 할 수 있었으며 재산 관리 및 처분도 임의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딸이 상속 과정에서 차차 배제되기 시작한 것은 이조 중기 때부터. 1654년 부여 김씨의 분재 기록에는 「오가리어타가 출가여자물여제사 전민삼분지일급지의」라 씌어 있어 결혼한 여자에게 제사 지내는 의무를 없애는 대신 유산 분배를 3분의 1로 줄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일부 공신층에서 장남에게 제사를 전담케 한 것이 차차 퍼져가 18세기에 들어 완전히 일반화돼 여성은 상속권을 잃게 됐다』고 말하고 『한국 여성의 남녀 평등 운동은 서구에서의 그것을 모방하기보다 이같은 한국 자신의 역사를 토대로 하여 펼쳐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결론지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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