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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짓고 허문 여가부의 19금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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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음원 사이트에서 가수 현아의 ‘빨개요’ 뮤직비디오(뮤비)를 보려면 성인인증(본인인증 포함)을 해야 한다. 야한 몸짓과 가사를 담은 ‘19금(禁)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음원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할 때 한 번만 성인인증을 하면 됐다.

 21일에는 성인인증 방식이 바뀔 예정이었다. 여성가족부는 1회 인증에서 ‘로그인할 때마다’로 절차를 강화했다. 청소년들의 유해 콘텐트 접근을 막는다는 명분에서다. 시행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여가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해묵은 논란이에요. 1년반을 끌어온 정책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미뤄줄 순 없어요.” 하루 전인 20일 담당과장은 자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나흘 만에 ‘거짓말’이 됐다. 24일 여가부는 예정에도 없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성인인증 주기를 연 1회 이상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 다름없었다. 로그인할 때마다 인증은 없던 일이 됐다.

 ‘로그인 때마다 인증’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2012년 9월 개정된 청소년보호법 16조 1항은 ‘유해매체물을 판매·대여·배포하거나 시청·관람·이용하도록 제공하려는 자는 상대방의 나이 및 본인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법률의 시행령에서는 공인인증서 등의 인증 방법을 정한다. 법률이나 시행령 어디에도 인증 주기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가부는 16조1항을 근거로 로그인 때마다 인증하는 것으로 유권해석했고, 이달 21일 본격 적용을 공언해왔다.

 성인인증을 한 번 할지, 매번 할지에 따라 국민 생활과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가부는 유권해석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매번 인증제는 불합리하니 개선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가부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현아의 뮤비는 유튜브에서는 성인인증이나 본인인증 같은 절차 없이 볼 수 있다.

 여가부는 “업계 요구와 청소년 보호, 두 가지의 균형을 잡은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권용현 차관은 “업계가 자율규제를 활성화하고 성인인증제가 청소년 보호에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는지 모니터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의 ‘로그인 인증’은 현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은 데다 추진 과정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지난 20일 여가부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여가부가 이렇게까지 해 줄지(연 1회 이상 인증으로 변경)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정부가 정책을 손바닥 뒤집 듯할 수는 없다. 1년반이나 끌어오던 정책을 바꾸려면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가부의 각종 청소년 관련 규제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