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밑바닥서 온갖 비리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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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박영한씨를 가리켜 백조 떼만 모여있는 우리 소설계에 한 마리 까마귀모양을 하고 나타난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보통 작가들은 단편을 들고 나와 독자와 낯을 익히고 문단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자기세계를 구축해 나가지만 박씨는 대뜸 장편을 들고 나와 「데뷔」했고 세 번째 작품까지 계속 장편만을 쓰는 완강한 개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하게 장편만을 쓰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로 나서면서부터 장편으로 밖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한 소재를 몇 가지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왔을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2편 정도 더 장편을 내놓고 그 다음엔 단편·중편도 쓸 작정입니다.』
박씨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 『노천에서』에 이어지는 연작 1편과 7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고 밝힌다.
『보통 장편 1편을 쓰려면 6개월 이상 걸리는데 그 동안은 밤과 낮을 바꾸어 생활하면서 고통스럽게 작업을 합니다. 그사이에 단편이나 중편을 쓸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 같은 「장편체질」로 78년 『머나먼 쏭바강』을 내놓으면서 3년 동안 3편을 썼다.
『노천에서』는 10여년전 고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가정교사·공장노동자·부두 경비원 등을 하면서 지내던 때의 이야기다. 『뼈저린 가난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집안사정도 얽히고 설켜 같은 형편의 친구들과 어울려 떠도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의 밑바닥을 접하고 온갖 비리를 알게됐지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끼리의 온정도 느꼈습니다.』
박씨는 그때 시인이 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진학하고 문학을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은 억눌려만 있는 그에게 유일한 출구였다.
그러나 그의 출구는 막혀있는 것 같았다. 박씨는 자살까지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고뇌했다고 한다.
『주어진 가난과 사회현실은 타협이나 순응보다 저항을 요구했습니다. 그 저항에 충실하려고 애썼지요.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집단의지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세하나마 저항을 하는 가운데 자기실현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박씨는 이 작품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낸 것으로 일종의 인생론이라고 했다.
『노천에서』는 부산근교 두구동에서 썼다. 서울 노량진에서 『머나먼 쏭바강』을 썼고 경기도 주안에서 『인간의 새벽』을 썼으니 주거를 한번 옮길 때마다 작품 하나씩이 니은 셈이다. 『노천에서』속에 보이는 방황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도 하지만 주위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의욕이 솟아나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엔 다시 경기도 덕소로 집을 옮겼다. 지난겨울 『노천에서』를 쓰면서 생긴 피로를 씻고 가을쯤 새 작품에 착수할 예정.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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