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탑 산업 훈장을 받은 석공 화순 광업소 광부 채정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막장 인생이 「넥타이」 맬 일도 있군요.』
근로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은탑 산업 훈장을 받은 채정규씨 (41·전남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97).
광부 생활 11년만에 처음 맨 「넥타이」가 어색해서인지 채씨는 이야기 도중에도 자주 손이 「와이셔츠·칼러」를 매만진다.
채씨는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굴진선산부. 지하 2백m의 막장에서 폭파 작업을 하고 갱을 뚫는 위험한 작업을 맡고 있다. 『돈주고 연탄 사서 쓰는 사람들은 우리 실정 모를 겁니다.』
언제 갱도가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지만 서민들의 겨우살이를 맡고 있다는 긍지로 이겨 나간다고 했다.
채씨는 69년부터 채탄부로 광부 생활을 시작했다. 8세 때 부모가 헤어지는 바람에 할머니 밀에서 국민학교만 졸업한 뒤 26세 되던 해 자립해 보겠다고 뛰어든 곳이 광산이었다.
처음 갱도에 들어갔다 나오니 가래에 석탄 가루가 섞여 나오고 코를 아무리 풀어도 검정이 묻어 나왔다. 어느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겠다던 것이 벌써 11년째. 아이들이 5명으로 늘자 이제는 광부를 천직으로 알게 됐다. 광부 생활을 시작한지 2년 뒤인 71년 갱내 폭파 사고로 동료 1명이 숨지고 자신도 왼쪽 팔에 중상을 입었지만 그뒤 광산 사고라면 누구보다 앞서 구조 작업에 나서고 있다. 동료들도 으례 사고가 나면 사무소에 알리기 전에 채씨에게 연락하는 것이 상례가 됐다.
『막장 광부와 지상 근무자간의 임금 격차가 현재 망산 근로자들의 가장 큰 불만입니다. 해가 갈수록 건강은 나빠지고 갱도는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자포자기하는 막장 인생을 만드는 원인들이지요.』
현재 노조 지부의 쟁의 부장직을 맡고 있은 채씨는 망부들의 작업 조건에 개선돼야 할 점이 있으면 서슴없이 회사 간부들에게 바른 말을 하지만 그 대신 생산량을 늘려야할 때는 앞장서서 동료들을 갱 속으로 끌고 가 더 깊이 더 많이 석탄을 캐고 있다. <엄주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