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리비아 탁구대표팀 김창제 코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국탁구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중동에 진출한 김창제씨(43)가 1일 잠시 귀국했다. 현재 「리비아」국가대표남녀탁구「코치」로 있는 그는 탁구를 통해 한국-「리비아」국교수립에 일익을 담당할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있는 대표적인 체육인.
충남공주농고, 국학대학을 거쳐 62년 신광여고창단「팀」「코치」로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한일은·충북은을 거치는 동안 노화자·김인옥·김길자·최환환 등 국가대표선수를 길러냈고 73년「사라예보」선수권에는 남자대표「팀」「코치」로 활약했었다.
김씨가 중동탁구의 처녀지인 「리비아」에 진출한 것은 76년 6윌.
「리비아」대표 「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데도 큰 곤란을 겪었던 김씨지만 먼저 대사급의교를 맺고있는 북한의 방해공작으로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북한공작원들은 수차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체조「코치」를 동원, 주먹세례까지 퍼붓는 등 위협을 했다.
특히 「리비아」남자대표「팀」을 이끌고 제5회「아랍」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이라크」「바그다드」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77년7월13일 납치하려던 북괴공관원들로부터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국내신문들이 대서특필, 유명(?)해진 체육인이기도 하다.
김씨는 78년 제6의「아랍」선수권대회에서 「리비아」남녀대표「팀」이 3, 4위에 올라 당시 수상으로부터 『우리가 해준 것은 적은데 너무 큰 선물을 주었다』는 찬사와 함께 「컬러」TV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또 여자탁구의 불모지인 「아랍」국가에서 처음으로 「리비아」여자탁구「팀」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은 수상의 처제 등 정부요직의 자녀들이 모두 탁구에 심취케해 「로열·스포츠」로 위치를 굳히고 있다.
이 때문에 미수교상태에서 「리비아」에 진출한 각 건설업체는 물론 민간인들도 모두 그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으며 교민들의 어려움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김씨는 77년 6월 「리비아」대표「팀」을 이끌고 내한, 15일 동안 전지훈련을 가졌으며 78년 5월에 휴가차 잠시 들렀었다.
「트리폴리」에 있는 36평의 「아파트」에서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월2천 「달러」로 생활하고 있다. <임병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