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금고와 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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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 밥 먹은 개가 발뒤꿈치를 문다』는 속담이 있다. 혜택을 입은 자가 도리어 해를 끼친다는 뜻이니 최악의 배신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새마을금고 이사장 3억원 횡령』 사건은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배신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어린이 저축은 나라의, 내일의 주인공에 대한 교육활동의 하나이며 그들의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는 일이다. 군침 도는 감귤의 유혹을 물리치고 푼돈을 소중히 모아 꼬박꼬박 저축하는 일은 바로 근검·절약·저축을 구체적으로 생활화하는 일이며 그렇게 해서 불어난 저금액 속에는 졸업 후에 살 교복도, 빨간 가방도, 엄마 아빠에게 드릴 깜짝 놀랄 선물도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 교육의 탑과, 티없는 동심들이 간직한 꿈이 못된 어른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무너지게 되다니 이보다 더한 분노는 없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남을 못 믿거나 남을 배신하는 일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겨왔지 않은가.
요즈음 우리사회에 남을 못 믿고 남을 배신하는 일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결혼을 굳게 약속하고 도움까지 받은 처지에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썽을 빚고, 날림 집을 지어 2중으로 팔아치우고, 은행부도를 내는 일 등은 이제 신문기사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다. 아무리 학교교육이 훌륭했다해도 사회와 어른들이 비교육적으로 어린이를 대접하면 도덕적인 태도교육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켜주는 성실한 사회와 어른들이 많아야 어린이들은 구김살 없이 교육받는 대로 자라게 된다. 어른들의 배신 때문에 멍든 어린이들의 그 아픈 마음을 신뢰로 풀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봄과 함께 우리 주변의 불신과 배신을 말끔히 씻어보았으면 한다. <이병진(문교부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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