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불편 씻고 정상궤도 진입한 한미관계|한미공동성명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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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두환대통령과 「레이건」미대통령이 3일 새벽 발표한 공동성명은 과거의 불편했던 한미관계를 말끔히 씻고 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평가된다.
이 성명은 한미양국이 70년대 특히「카터」행정부시절에 한때 표출됐던 소원한 관계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맹방관계에 있음을 명확히 선언하는 외교교서인 동시에 새 시대와 새 체제를 맞이하는 양국 행정부관계의 앞날을 가늠하는 지표로 볼 수있다.
성명의 특성은 우선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한미 지상군의 계속 주둔과 한국군의 전력증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명 제4항에서「레이건」대통령은 『미국이 한반도로부터 미지상군 전투병력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음을 전대통령에게 보장했다』고 밝힘으로써 지난77년3월「카터」전대통령에 의해 제기됐던 주한미군철수 문제는 3년10개월만에 백지화 된 셈이다.
주한미군의 불철수보장과 관련, 공동성명은 언제까지 철수계획이 없는지, 그 시한을 명백히 밝히지 않았으나 외무부당국자는 『그 기간을 밝히지 않은 점이 오히려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행정부 당시 금년중으로 철군 문제를 재검토키로 했던 것을 전대통령과 「레이건」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불철수보장으로 낙착된 것은 양국지도자가 한반도정세에 관해 인식을 같이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으로 극동지역에서 증강되고 있는 소련의 군사력에 대한 억지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69년 7월의 「닉슨·독트린」이후 미국의 대외방위공약에 회의를 품어오던 우방들로부터 신뢰를 되찾는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한 무기판매및 방위산업기술제공 약속은 오는 82년부터 개시되는 제2차 한국군 전력증감 계획기간동안 한국군의 화력및 기동력을 증강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정부는 지난 78년부터 매년 최소한 2억7천5백만「달러」상당의 대한군사 판매차관을 미국측에 기대했으나 실제로 미국측이 한국에 제공한 군사판매 차관액수는 ▲79년 2억2천5백만「달러」▲80년 1억2천9백만「달러」▲81년 1억7천5백만「달러」에 국한돼 왔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측이 구매를 원하고 있는 M-60전차와 F-16전투기의 대한판매가 순조롭게 추진되고 82년부터 한미양국이 공동 생산키로 돼있는 F-5전투기를 F-16으로 기종을 대체하는 것도 긴요하다.
공동성명 제6항에서 「레이건」대통령이 전대통령의 「1·12」대북 제의에 대한 찬의를 표명한 점은 미국의 대북괴 접근 가능성을 배제하고 한국정부의 평화통일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조항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이 조항은 지난 79년7월 박-「카터」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과 일전 비슷하나 79년의 성명이「카터」대통령의 용의표명이었다는 점에 비해 이번 성명에서는 양국대통령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밝힌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양국정상이 「카터」행정부 시절에 열리지 못했던 각종 협의체의 개최시기를 못박은 것은 그 동안의 마찰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고 한미관계가 정상궤도에 진입했음을 내외에 천명하면서 양국간의 전통적인 우호및 동맹관계를 긴밀히 다져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동 성명8항과 9항에서 양 대통령이 그간의 경제관계의 규모증진에 만족을 표시하면서 이례적으로 한국이 미국에 있어 제12위의 교역국이며 미국 농산물 수출시장으로서는 제5위인 점을 강조한 점은 한미양국이 비단 정치·외교·안보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으로 봐야겠다.
이 조항에서 자유스러운 무역체제의 육성을 모색키로 합의했다고 밝힌 점은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다소간 불식시키고 특히 교역 상대로서의 한국의 위치를 강조한 것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무역특혜를 부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동성명은「에너지」협조와 관련, 미국은 양국간의 안보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긴급사태 발생시 한국의 「에너지」공급확보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한국이「에너지」확보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동전과 같은 긴급사태가 발생해 원유확보에 차질이 생길 경우 원유공급을 해주겠다는 미국 측의 보장으로 해석된다.
그대신 한국은 미국이 수출에 부심하고 있는 석탄과 핵발전 설비등의 수입을 고려할 뜻을 비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전대통령과「레이건」미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정세·안보협력·남북한문제·경제협력 및 문화교류촉진등 각분야에 걸쳐 골고루 언급하면서 한국안의 정치발전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이는「레이건」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대로 동맹국의 성실에는 성실로 대할 것이며 우리의 우정을 그들의 주권을 침해하는데 사용하지 않겠다는 기본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되며 이 같은 정책은 인권을 내세워 우방에 대해 내정 간섭적 태도를 보였던 「카터」행정부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엄해제·김대중감형·대통령및 국회의원 선거실시등 한국내에서 순조로운 정치일정이 추진되고 있는데도 미국식 철학과 이념만을 토대로 한국문제를 언급할 경우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한국안의 정치적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겠다. 【워싱턴=성병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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