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5)제72화 비규격의 떠돌이 인생(22)|<제자=필자>김소운|포석 조명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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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해 시대일보가 창간되었다.
「제국통신」의 단 하나 조선인기자인 내가 지사장을 대신해서 같은 「명치정」- 지금의 「유네스코」회관 옆 골목에 있던 시대일보사로 축의를 표하러 갔다. 사장은 육당 최남선, 편집국장이 진학문씨였다. 그런 인연도 있어서 그 뒤 나는 습작시를 가끔 이 시대일보에 발표하곤 했다.
60원 월급을 처음 받은 날이다. 마침 어려서 자란 진해에서 동갑 또래 친구인 안창해군이 상경했다. 나는 오래간만에 만난 옛친구에게 푸짐한 저녁대접이라도 할 생각으로 안군을 데리고 종로로 나갔다.
보신각 앞에 4, 5명이 쪼그리고 앉아 땅바닥에 깐 포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종이를 쌀 낟알만하게 대여섯개 손으로 돌돌 말아서 그중에 한 일자 있는 것을 찾아내는 노름이다. 한판이 3원, 맞히면 갑절인 6원이 온다.
혼자서는 그럴 배짱이 없지만 친구가 곁에 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3원을 걸었더니 거짓말같이 쉽게 맞혀서 6원이 돌아왔다. 또 한번, 또 한번-, 처음 서너번은 돈을 땄으나 그 뒤부터는 계속 잃고 잃고 해서 삽시간에 월급봉투가 바닥이 났다. 그제야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일당들은 내가 그중 하나의 손목을 잡는 순간 재빨리 뿌리치고 번개같이 사라져버렸다. 덕분으로 안군과 나는 15전짜리 설렁탕 한 그릇으로 초라한 저녁을 때웠다.
이날의 이 뼈아픈 교훈으로 해서 나는 일생토록 「노름」이나 「내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나 자신 어지간히 도박성을 지녔으면서도 그 뒤 오랜 세월을 두고 「갬블」의 유혹에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종각 앞에서 치른 60원 월사금 덕분이다. 그다지 비싼 월사금은 아니었던 셈이다. 마음 내키지 않는 통신사 기자노릇을 하면서도 내 나름의 번뇌를 잠시 잊을 시간이 있었다. 포석 조명희씨를 대하면 마음은 구김살 없는 소년으로 되돌아간다.
포석댁은 소격동-, 공초선생이 사는 간동과는 지척이다. 힘들여 밀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대문에 안채엔 방 둘, 아래채 하나, 부인과 어린 자녀 셋-그런 살림이었다.
포석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나를 압도해 버렸다. 일본작가「아꾸다가와」와 어딘지 닮은 풍모인데, 그 단정한 얼굴은 언제나 침울에 잠겨 있었다. 그 얼굴에 가끔 쓰디쓴 웃음이 떠오른다.
낮에는 「제통」기자노릇을 하면서도 밤이면 자주 포석댁을 찾아갔다. 어느 때는 밤이 늦어 포석과 한방에서 자고 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포석은 소년 같은 정열로 내게 새로 쓴 시를 읽어주고, 시론의 원고를 들려주고 하면서 밤 깊은 줄을 몰랐다.
그의 시나 시론이 어디까지 내게 이해됐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포석에게서 배운 것은 문학의 지식이나 시의 기술이 아니요, 빈곤과 오뇌 속에서도 언제나 돋아나는 떡잎같이 신선한 그의 정열-, 호리의 타협이 없는 꿋꿋한 신념-그것이었다.
나는 이날까지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를 허다히 보아왔다. 내 나라에서나, 남의 나라에서나-.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런 시인 중에는 포석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준엄한 시인은 없었다.
어느날 새벽, 포석댁에서 밤을 새운 나는 잠결에 부인이 와서 남편을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었다. 쌀이 없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부인이 나간 뒤에 포석이 내 쪽을 보면서 『소운-돈 좀 가진 것 없소?』하고 물었다.
『있습니다. 얼마나 드릴까요?』『한 5원만-, 내일은 어렵고 모레안으로 돌려 드릴께-.』『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쓸 돈도 아닌데요.』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5원 지폐 한장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포석께 드렸다.
하루 사이를 두고 밤들어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날도 진종일 눈보라가 그치지 않는다. 밤 10시나 되었을까- 삼판통(동자동) 내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전신에 하얗게 눈을 둘러쓴 포석이 서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오. 돈이 좀 더디 돼서-.』
그러면서 포석은 5원 지폐 한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소격동에서 삼판통까지는 거의 10릿길이다. 더우기 이 밤중에-, 이 눈길을-. 아무리 약조를 했기로니-. 나는 포석의 그 고지식이 되려 원망스럽기도 했다.
『객지사람의 주머니를 털어서 미안하오. 그럼 잘 자시오.』
문간에 선 채 그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눈물겨운 감동으로 나는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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