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의 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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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불교계의 해묵은 고질이 기어이 계엄당국에 의해 수술될 즈음에 있다. 우리는 우선 「불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영역이 정치적·사회적 제재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의 영역에서 독립해, 마땅히 국민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정신계도에 공헌해야 할 우리 불교계가 자체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그 위신마저 손상을 입게된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통탄하게 되는 것이다.
당국이 밝혔듯이 이제 불교계는 「자율정화」를 외면한 때문에 사회정화의 차원에서 타율적인 정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불교계의 기강이 오죽 해이해지고 이욕의 싸움이 얼마나 극심했으면 속인들의 지탄과 조소를 받음에 그치지 않고 이젠 사직의 철퇴까지 받게되었는지 새삼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이번 수사의 대상은 주로 77년9월 이후의 종권을 둘러싼 조계종단 내분의 중심인물들과 축재·폭력·파렴치행위 등으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켜 온 승려, 그리고 조계종단 주변에 기식하며 불교계에 말썽을 불러온 인물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불교의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의 비리는 결국 종권 다툼·재산싸움의 두 가지 원인으로 귀착된다고 하겠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욕」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이욕이야말로 불교가 가장 경계하고 배척하는 바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색정에 눈멀고 이욕에 빠지는 탐, 제 마음대로 안 된다고 성내는 상태인 진, 어리석게 날뛰는 치를 불교에선 깨달음을 가로막는 독소라고 해서 이 「삼독」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승려의 몸으로 계를 무시하는 것은 본질을 잃음과 같다. 계는 바로 『만선발생의 근본』이라고 경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더우기 승려는 신도들로부터 불·법과 함께 귀의의 대상이 되는 삼보의 하나되는 존귀한 존재인 만큼 계행과 수도에 있어 마땅히 사표가 되고 귀감이 되어야 한다.
그렇건만 오늘의 승려들이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잊고 세상을 어지럽힘은 실로 부처님에 누를 끼침과 같은 죄악이라 하겠다.
석존도 일찌기 부처를 팔아 멋대로 행동하는 승려들을 꾸짖어 『어찌해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는가』하고 나락에 떨어질 자들이라고 경계한 바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승단이 이처럼 기강을 잃고 무질서하여 만신창이의 몰골을 드러내게 된데도 그 연원을 추급할 수 있다.
비구·대처의 싸움이 시작되었던 54년의 제1차 불교정화시대에 벌써 우리 종단은 어중이 떠중이의 시정잡배들이 모여 멋대로 활개칠 소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 소지 때문에 62년 통합종단발족이후에 조계 종단은 무시무종으로 분규를 계속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밖에 없었다. 비생산적인 종단 풍토와 자질 없는 많은 승려들의 전적이 종단을 좀 먹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불교계 비리는 뿌리가 깊고 오랜 시간의 경과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 비리로 해서 1천6백여년의 역사전통을 가진 우리 불교는 오늘에 널리 떨치지 못하고 신도들은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비리를 제거하고 정화하지 않으면 참다운 의미에서 우리 불교는 발전할 수 없고 불법도 광휘를 떨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당국의 불교계 비리 수사는 단순히 불교계의 불행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우리불교계가 파사현정의 결의를 다지며 제2의 불교정화를 성공으로 이끈다면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종단이 수도와 교화에 정진하는 본연의 자세를 가다듬고 중생을 위한 보살행에 앞장 설 것을 촉구하며 당국의 정화가 무리없이 수행되어 불교계가 보다 발전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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