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차라리 백과사전 읽으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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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24면

요즘 석영중 교수의 책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2013)를 읽기 시작했다. 잠깐 들춰볼 생각으로 펼쳤는데 재미있어서 놓질 못했다. 푸슈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부분을 단숨에 읽었다.

인문학 열풍의 허구

주인공 오네긴은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러시아의 ‘모던 보이’다. 시골 영주 저택에 놀러 가서 그곳의 전통 러시아 요리와 여러 사람이 숟가락 하나로 잼을 먹는 관습 같은 것에 눈살을 찌푸린다. 석 교수에 따르면, 푸슈킨은 서구적 유행에 따라 바이런식 허세로 가득한 오네긴을 풍자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서구적인 것을 무조건 배척하는 러시아 민족주의파에게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런 푸슈킨의 생각이 종종 서구식 식사와 전통 러시아식 식사 장면의 대조적 묘사로 드러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구한말의 상황이 연상되기도 하고, 음식이 문화적 기호로서 갖는 힘이라든지, 음식의 국제 교류와 문화 패권의 관계 등을 생각해보게 된다. 맛깔스러운 인문학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신선한 접근으로 언론에서도 꽤 다뤄졌는데도, 책 수준에 비해 판매량이 매우 적다. 이 책만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인문학서, 즉, 당장 우리 생활과 직결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연결되건만) 순수한 지적 즐거움에 초점을 둔 책은, 이른바 ‘인문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한다.

최근 몇 년 간 인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고전 철학서나 문학을 통해서 삶의 지침을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이들 중에 좋은 책도 많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천국’인 한국에서 자기계발서의 좀더 품위 있는 버전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 스스로 삶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기보다 누군가 명쾌하게 ‘이러이러하게 살아라’고 정리해주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부응하는 것이다.

둘째는 ‘인문학’이 들어가는 제목을 달고 서구 철학과 문학·예술 사조를 압축해 나열 정리한 책이다. 예전부터 나왔던 상식 백과사전과 다를 바가 없는데 제목에 ‘인문학’ 간판만 달았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참고서로 유용하리라.

이러니 무슨 ‘인문학 열풍’인가. 결국 한국에서 원래 가장 잘 팔리는 두 종류의 책(자기계발서와 입시·취업 참고서)이 ‘인문학’이라는 포장만 새롭게 썼을 뿐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5번째 에디션. [SEWilco]

정말 인문학 공부를 할 생각이 있다면, 그런 한 권짜리 참고서보다 차라리 정식 백과사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은 각 항목을 그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들이 썼기 때문에 비교적 신뢰할 만한 지식을 종합적이고 압축적으로 얻을 수 있다. 19세기 유럽 지성인들부터 현대 미국 IT 신화 빌 게이츠까지 어릴 때 백과사전을 독파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일단 흥미가 가는 한 항목을 찾는다. 그 항목을 읽다 보면 모르는 인명이나 지명이나 전문용어가 나온다. 이번엔 그들 항목을 찾아 읽는다. 다시 거기에 나오는 모르는 것들을 찾아 읽는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거의 다 읽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이렇게 탐색을 계속할 호기심과 열정이 있어야 하며,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각 항목으로 얻은 단편적 지식을 자기 머리 안에서 잘 맞춰서 전체적인 그림을 만드는 주체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후자가 만족될 때는 백과사전 읽기가 충분히 질적으로 우수한 인문학 공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학생이 그런 식으로 공부하겠다고 하면 적지 않은 부모가 ‘제정신이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는 서점에 가서 ‘한 권으로 읽는 인문학 강의’나 ‘지금 인문학에 미쳐라’ 같은 제목이 달린 책을 사서 쥐어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나서서 인문 융성을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장의 자기계발이나 입시·취업과 관련 없이 순수하게 지적 재미를 주는 종류의 인문학서가 인기가 높아져야 진정한 ‘인문학 열풍’이다. 그런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삶의 태도와 미래의 비전에 대한 주체적 사고가 나오며, 거기에서 진정한 ‘창조’가 이루어진다. 이런 풍토를 만들기 위해 다같이 고민해야 할 때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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