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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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법시험 개선안>
대법원은 현행 사법시험제도에 대한 개선 안의 하나로 응시자의 자격을 4년제 법과대학졸업자나 졸업예정자로 제한하고 시험과목도 현재의 16개에서 법률관계과목 8개로 줄이는 방안을 내놓았다.
아직 건의단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법조인의 유일한 등용문인 사법시험에 대해 대법원이 마련한 안이라는 점에서 지망생은 물론 모든 국민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법시험이나 고시라고 하면 흔히 요거의 현대판이란 인식이 널리 뿌리 박혀있다. 과거에 급제해서 이사회를 받고 금의환향할 것을 꿈꾸며 밤을 밝혀 공부하던 옛 선비들의 꿈은 오늘날 입신을 바라며 고시공부에 혼신의 정열을 쏟고있는 젊은이들에게 이어졌다해서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대학의 법과가 사실상 고시준비장이 되고 이를 지망하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과목은 제쳐둔 채 고시에만 몰두하는 것도 그렇지만 고시 하나에 매달려 젊은 날을 보내다 뒤늦게 인생의 진로를 바꾼 경우를 숱하게 본다.
한해에 겨우 몇백명을 뽑는 좁은 등용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 수만명이 얽매여 있다는 것은 귀중한 인력의 낭비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의 개선 안은 전문화된 법조인을 확보한다는 목적 말고도 현행제도의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을 심판하는 법관의 특수성에 비추어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고도의 인격수련이 필요하고, 정상적인 교육이 이를 위한 주요 전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현재 응시자의 대부분이 법학전공자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작년도 사법시험합격자 1백49명 가운데1백41명이 법과대학출신자거나 재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불필요한 인력낭비를 막기 위해 현행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관등용의 문호를 법학전공자로만 좁혀야한다는 주장은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전공이나 학력이 사람의 재능을 잴 수 있는 척도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바로 인격이나 인문적인 조련 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은 복잡한 인간문제를 다루고 심판해야 하기 때문에 해박한 법률지식이나 이론 못지 않게 인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와 형안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다원화·산업화 추세에 따라 법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한 사람의 법관임용으로 오히려 비 문화를 촉진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해서, 또는 독학을 했다고 해서 선망의적인 고시에의 응시의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는 것은 기회균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그렇지 않아도 법관의 관료조긴「엘리트」의식은 자주 비관의 대상이 되고 했다. 우리나라 모든 법과대학이 과연 유일한 법관양성기관으로서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가도 문제지만, 법과출신자만으로 임용할 경우 법관은 더욱 폐쇄적이 될 우려가 있다.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성이 보다 강조되고 외 골수 사고방식이 지양되어야할 시점이 아닌가.
법학대학출신이라야 법관이 된다는 논리라면 사범대학 출신은 꼭 교사를 해야하고 신문기자는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라야 한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법관의 자질을 높이고 전문화를 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법대학원과점을 강화할 수도 있는 것이고, 미국과 같이「로·스쿨」을 대학원 대학으로 해서 일반 대학출신으로 응시하게 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일 것 같다. 그렇게되면 지금과 같은 만성적인 법관부족 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이 이 같은 개선 안을 내놓은 것은 내년부터 사법시험합격자를 현재의 1백40명에서 3백명으로 대폭 증원하게 되자 이에 따른 법관의 질 저하를 막고 전문화할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사법시험제도의 개선은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에 맞는 방안이 나오리라 기대되며 그에 앞서 왜 그와 같은 발상이 나왔는지를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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