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에 봉사하며 「재미」있는 방송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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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 덕수궁에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국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언제 나처럼 국전이 열릴 이맘때면 거기에서 한국의 가을을 찾고 한국의 문화를 음미하곤 한다. 10월은 참으로 좋은 달이다. 하고많은 공휴일의 무료를 「텔레비전」으로 달래는 나에게는 어쩌면 이 달은 더 할 수 없이 귀중한 달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제바닥 짚듯 해야할 방송윤리의 오의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그것의 참뜻을 되새겨볼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사람의 시청자로 돌아가 숲 속에서 숲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는 것은 그것대로 소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텔레비전」은 완전히 우리 사회의 환경이 되었다.「텔레비전」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어떠해야하며 도대체 재미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이러한 많은 물음에 부닥치고 있다.
어떻든 「텔레비전」은 한시대의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문화변동을 야기케 하는 엄청난 영향력으로 군림하고있다.
참으로 「텔레비전」은 문화 비평가에 의해 어떻게 평가되든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그 중요성은 날로 가중될 것이며 우리와 더욱 더 불가분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텔레비전」이 사회문화활동의 영역을 넓혀오면서 그 동안 우리에게 갖가지 문제들을 안겨 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텔레비전」문화의 이중구조, 즉 도시와 농촌, 서민과 중간층 이상간에 동일한 방송내용의 섭취과정에서 빚어지는 편견과 시각의 혼란, 그리고 상업성과 공익성의 제각기 다른 두 측면이 혼재하는 이유 등으로 방송의 제대로의 평가를 어렵게 해준 것도 또한 사실이다.
방송의 재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것에 연유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코미디·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두고 한편에서는 그것이 사회생활의 긴장과 욕구불만을 해소시켜주는 새로운 생활의 활력소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하잘 것 없는 「난센스」로 숫제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텔레비전」이 모든 문화를 동질화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건전한 문화(전통문화·고급문화)마저 저속한 문화로 바꾸어놓는다는 성화같은 비난이 있는가하면 「텔레비전」이 되려 건전한 문화의 대중적 기반을 확충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올법한 일이다.
어느 경우든 「텔레비전」은 그 매체가 갖는 속성과 그 내용의 특성으로 하여 양면적 성격을 떨쳐 버릴 수는 없다.
방송의 올바른 재미의 뜻을 짐작하고 그것의 본령이 무엇인가를 알려는 우리들의 어려움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방송의 재미인가의 가늠자는 일차적으로 방송경영인의 철학과 방송이념에 미룰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긴 역사적 안목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어렵고 급격한 변혁기에 놓여있다.
앞으로 몇 해 동안의 이 나라의 전운이 이 민족의 먼 앞날을 점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기를 튼튼히 하는 일에서부터 민생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엄청난 현실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려면 무엇보다 대중매체, 특히 그 가운데서도 엄청난 감응력을 갖는 「텔레비전」의 소임에 대한 우리 모두의 철저한 인식부터 새로워야 한다.
방송의 방향도, 방송의 재미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이 어려움을 이겨보려는 만족의 시름에 관한 것이며 갈 살아보려는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들이다.
방송은 무수히 널려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정성스레 쓸어 담아 실속 있는 재미를 찾아야한다.
감상은 언제나 불모의 사상밖에 낳지 못한다.
하잘 것 없는 헛웃음, 시답잖은 얘기들은 이제 깊이 있는 재미, 의미 있는 얘기들을 말끔히 바꾸어봄직도 할 때다.
그러려면 여기에는 우리방송인의 참의와 공인의식이 따라야 한다. 그것은 문명의 이기인 방송을 크게는 인류복지와 평화유지에서부터, 작게는 일상생활의 편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공익에 봉사하며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극명히 따져 두어야 한다.
복지사회의 반려자로서 가치규범·사회규범을 체험하게 하고 참된 삶이 무엇이며 옳고 그른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일깨우는 선각자로서의 방송인의 공인의식이 함축될 때 그 방송은 진정 재미있는 방송일수 있으며 사회문화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청자들은 그러한 방송을 격려하고 편달하며 그러한 시청자의 안목과 그러한 시청자를 위한 우리방송인의 창의적 노력이 맞닿을 때 그것이 참으로 알차고 재미있는 방송일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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