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경찰 첫 충돌 10·26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성대>
성균관대 학생 2천여명은 1일하오5시50분 당국이 입영집체훈련을 거부한 1학년 학생 2백53명중 87명에게 징병검사통지서를 발부한데 반발, 「영장철회」와 「계엄해제」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뒤쳐나가 10·26이후 학원사태로는 처음으로 학생과 경찰이 충돌했다.
학생들이「스크럼」을 짜고 교문밖으로 나가자 교문앞에 출동해있던 4백50여명의 경찰관들은 처음엔 방페로 이들을 저지하다 학생들의 힘에 10여m쯤 밀려나자 갑자기 「페퍼·포그」와 1백여발의 취루탄을 쏘며 방패와 경찰봉으로 학생들을 마구 때렸고 학생들은 투석으로 이에 맞섰다.
10여분간의 충돌로 이종완군 (19·경제과1년) 등 3명이 머리가 터져 중상을 입는등 모두49명의 학생들이 중경상을 입었고 경찰관들도 학생들이 던진돌에 맞아 38명이 부상했다.
학생들은 이날 하오1시교내에서 영장철회와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성토대회를 가진뒤 하오4시쯤「스크럼」을 짜고 교문앞으로 진출,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학생들에게 밀려 철제교문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학생들이 계속 밖으로 뛰어나갈 기세가 보이자 하오4시30분쯤 김경수총장이 교문앞으로 나와 『당국자와 만나 해결점을 찾을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설득, 학생들은 일단 진정됐고 교문안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하오5시30분까지 총장의 답변을 기다리던 학생들은 김총장이 당국자와 타협점을찾지 못하고 들아왔다는 학생회 간부들의 말을 듣고서로 흩어지지 않도록 「나일론」끈으로 주변을 둘러치고 교문밖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영장철회와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성토를 벌인뒤 하오7시30분쯤 2백여명씩 조를 짜고 교문앞으로 나가 경찰에게 투석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교문안으로 쏘면서 대치했다.
학생들은 단과대학별로 학생회관 1층부터 9층까지 분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한편 성대는 2일상오9시 긴급교수회의를 열고 입영집체훈련을 거부, 시위와 철야농성을 펴고있는 학생소요사태를 해결키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교수들은 이날 하오1시 제2차 교수회의를 열어 정부의 교련개선안에 대한 교수들의 입장과 학생들에 대한 권고문을 채택, 발표키로 했다.
학생들은 성균관대총학생회장단을 비롯, 각 단과 대학회장단·「서클」회장등으로 비장대책회의를 만들어 ▲징집영장발부철회 ▲비상계엄령철회 ▲명백한 정치일정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충남대>
충남대학생 2천여명은 1일하호5시 ▲계엄령해제 ▲어용교수퇴진 ▲입영집체 훈련폐지 ▲보직교수사퇴등을 요구하며「스크럼」을 짜고 3km 떨어진 대전시중앙노·도청앞·대전역앞등 중심가에서 가두시위들 벌이다 경찰과 투서전을 벌인끝에 하오6시40분쯤 학교로 돌아가 해산했다.
경찰은 이사대로 경찰관46명, 학생 8명이 다쳤고 경찰의「가스」분사차 1대가 학생들이 던진 돌에 기름「탱크」가 맞아 터지면서 불이나 전소했다고 밝혔다.
이학교 5천여명의 학생들은 이날상오10시 학교운동장에서 학생총회를 열고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 교내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가운데 2천여명이 하오3시쯤 교문밖으로 뒤쳐나갔다. 이때 대기중이던 경찰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 1백여발을 발사하자 학생들은 투석전으로 맞서 약1시간동안 교문을 사이에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학생들은 하오5시10분쯤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후문을 통해 시내로나가 영부동퇴미고개∼대흥동「로터리」∼대전역으로 이어지는길과 대전문화원앞∼문화방송앞∼도청앞∼중앙로∼대전역으로 이어지는 2갈래길로 3km나 「스크럼」을 짜고 『계엄해재하라』는등 「플래가드」 들고 구호를 외치며 나갔다. 학생들은 대전역앞에 있는 D일보사옆을 지나갈때는 「공정보도」 「언론자유」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하오6시쯤 학생들은 대전역광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연좌「데모」를 벌였고 이때 1만여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았다.
하오6시40분쯤 학생들은 서명원총장이 『나와같이 학교로 돌아가자』고 설득하자 질서정연하게 대오를지어 교가·애국가등을 부르면서 학교로 되돌아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