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함상훈의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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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1월5일, 「뉴델리」사건에 관한 함세훈 김동성의 증언을 들은 국회주변에는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어 기마대가 출동해 군중들을 제지했다.
이날 국회는 의석과 방청석을 가릴것없이 흥분·긴강·야유가 범벅이 되었다.
나는 정각 10시에 본회의장에 출석했다. 자유당의석은 텅텅비어 있고 민국당과 무소속의원들만 보이자 방청석에서는『오늘도 함상훈이 안나오는것 아니냐』 는 고함이 들려왔다.
신익희전의장은 의석에 앉아 동료의원들과도 일체 담소를 하지않고 담배만 피워물고 있었다. 10시15분 김동성이 나와 증인석에 앉았고 10시20분 이기붕의장이 의장석에 자리를 잡았다.
11시 정각 화제의 함상훈이 입구에서부터 「카메라」세례를 받으며 당당히(?) 입장해 김동성과 착잡한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했다.
사회를 맡은 최정주부의장이 『위증을 할때는 1년이상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증인감정법조문을 읽어주고 두증인으로부터 선서를 받았다.
먼저 윤형남의원(무·순천)이 『「뉴델리」사건에 국한해 발언을 듣자』고 했고 이어 조순의원(자유)이 함에게 요구하는 증언의 요지를 설명했다.
조정의 얘기가 길어지자 야당석에서는 『이런 제기…』 『함상훈에게 보고하느냐』 『함씨가 조카냐』는 등등 야유가 연발했다.
자유당의 김두한마저 주먹을 쳐들고 『본론만 얘기하라』고 고함을 쳤다. 조순이 야유속에 얘기를 끝내자 내가 등단했다.
나는 야당을 대표해 김동성에게 요구하는 증언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하단했다.
11시20분 드디어 함상훈이 등단하자 의원석·방첨석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함이『국내에 침투한 제3세력…』운운으로 말문을 떼자 야당의석에서는 『「뉴델리」얘기를 해라』『그런건 다 알고있다. 강연은 무슨강연이냐』고 소리를 쳤고 자유당의석에서는 『말 안듣는건 모두 공산당이다』고 응수했다.
함상훈의 증언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대한민국에 제3세력이 조성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제3세력이란 비공산·비자본주의의 중간노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예컨대 인도같은 것으로 남한에는 족청전향파와 한독당협상파가 암암리에 제3세력을 노리고 있는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의 김룡중, 미국의 김삼규같은 사회당파 세력이 민국당에 침투했기에 가능한 사직당국의 힘을 빌지않고 방지하려 했지만 잘 되지않아 성명을 내놓았다.
신익희가 주동이 되어 조봉암과 합하여 야당연합으로 민주연맹을 조직하려 기도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신의장은 「뉴넬리」밀회를 부인하고 있지만 밀회설의 증거를 들어보면 귀국후에 쓴 기행문에 인도에 들렸다는 말을 빼고 국회의장으로서 중립국감시위원단의 구성국가인 인도에 안들렀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않는다.』
이같이 피력한 함상훈은 야당의원들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조재천」·「김상돈」등 일일이 이름을 대가며 호령조로 인신공격을 하자 야당석에서 『내려오라』고 고함을 질렀고 자유당석에서는「O·K」라고 맞고함을 치는등 희의장이 야시장처럼 되었다.
한시간만에 증언을 끝낸 함상훈은 질문을 받지않고 퇴장해 버렸으며 이어 김동성이 나와 『① 「뉴델리」에서 신익희·조소앙이 만나지 않았다 ②7월26일밤「뉴델리」공항에서는 30분밖에 체류하지 않았다 ③나는 우익인데 신의장도 우익이더라』고 간단명료하게 증언했다.
함·김 양인의 증언이 끝나자 강승구의원(무·양주을)이「토의종결」을 동의했으나 김두한이 『말할사람은 다 시켜야한다』고 선창해 신익희가 등단했다.
신익희전의장은 『문제가 있으면 대한민국 국법으로 다스릴것이지 국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것부터가 잘못이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버나드·쇼」의 인생은 극장이란 말처럼 인생이 극장이라면 사람은 배우이고 정치무대는 극장이라고도 할수 있다』면서 『가령 이것이 연극이라면 3류 연극이요』라고 한바랑 웃어댔다.
결국 국회는 내무·법무등 관계당국이 진상을 수사하도록 일임하고 논란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이사건은 장택상(무)과 김준연(무)이 배후에 있고 김창룡 특무대장이 꾸민 흉계라는후일담을 남겼다. 자유당은 이사건을 계기로 개헌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당내반발세력에 제3세력대두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이용해서 이탈을 견제하는데 성공했다.
자유당은 이어「중립화 반대협장 배격 결의안」을 통과시켜 개헌안에 국가안전에 관한 중대사항은 국민투표로써 결정한다는 구절을 삽입해 개헌이 결코 1인독재를 위한것이 아니고 국가안위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선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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