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다음은 반소 「아프가니스탄」군이 입수한 어느 소련군의 개인수첩에 실려있는 시를 번역한 것이다.
사망한 낙하산병으로 추측되는 이 수첩의 주인공은 감동적이고 애처로운 몇편의 시와 함께 색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남겼다.
항상 죽음을 느끼며 생활하는 낙하산병의 심정을 생생히 그려낸 이 시들을 미국의 시사주간지「타임」지는 「아프가니스탄」사태에 관한 기사와 함께 수록, 개인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는 전쟁의 비정을 상징적으로 부각시켰다. <편집자주>
나는 가리라
슬픔에 잠겨 소년은 말했네.
소녀에게 오래 걸리진 않아.
기다려 줘 돌아 오리니.
그는 가버렸네.
첫봄도 맞지 못한채.
그리고 돌아왔네.
군용의 철제 관속에 누워.
새벽이 오기전에 그는 죽었지.
상처를 입고 관속에 누워 땅에 묻혔네.
우리를 위한 사람의 별들이 불붙는 어느 봄날,
전쟁이 아닌 평화속에서
관속에 누웠네.
어머니는 흐느껴 울고 아버지는 그림자처럼 서있대.
그들에게 소년은 아직 어린아이인데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삶의 첫걸음도 밟기 전에
군용의 철제 관에 누워 돌아 왔던가?
언젠가 소년은 소녀에게 다가가
꽃을 바치고.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불러 주었지.
눈이 녹아가고 해빙이 찾아온 그 순간까지도.
그는 핏속에 그 작은 소녀의 이름을 새겼지
바람이 무덤위로 눈발을 흩날렸네.
「기다릴께요」약속했던 소녀는
다른 소년에게로 가버렸네.
눈이 녹아 버리자
그 이름도 함께 사라졌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