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의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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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 팔이 잘린 사람, 다리를 모두 못 쓰는 사람,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 상처투성이의 사람…이런 2백여 명의 사람들이 눈보라 속에서 줄지어 서 있었다. 초능 력자 앞에서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은 물론 아니다.
요즘 「테헤란」에서 「팔레비」 전 왕의 죄상을 조사하고 있는 「유엔」사문위에 출두한 무리들.
새삼 독재정치의 비정과 냉혈에 전율하게 된다.
『비밀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재를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의 부하가 되겠다』 고 풍자한 문학자가 있었다. 임어당의 익살(?)이다.
「팔레비」의 전제정치를 지탱해준 무기도 역시 「사바크」라는 비밀경찰이었다. 미국의 CIA를 본뜬 이 조직은 5만 내지 10만 명의 요원을 갖춘 공포의 기관이다. 전국 각지에서 이들은 민중 속에 깊게 스며들어 전제정치를 위협하는 모든 언행을 감시했다.
밀고자의 조직도 엄청나 「이란」인 10명 가운데 한 사람 꼴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오로지 독재의 유지만을 위해 모략·암살·고문·탄압을 일삼아 왔다.
오늘의 집권세력은 「팔레비」독재 38년 동안의 희생자는 60만 명을 헤아린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비록 과장된 것이라고 해도「10만 단위」의 숫자엔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팔레비」의 정치생명을 위협한 것은 폭력, 그것만은 아니었다. 경제계에도 「사바크」와 같은 폭력조직이 있었다. 「이드로」(IDRO)가 바로 그 기관이다. 「이란」공업개발혁신기구. 명칭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는 「팔레비」의 독재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란」의 공업화·근대화를 추진·관리하는 공사 1백1사가 바로 이 「이드로」의 「컨트롤」을 받아야 했다.
「이드로」를 움직이는 실력자는「팔레비」자신과 「파라」왕비,「팔레비」의 누이 「아슈라프」비 등 「로열·패밀리」. 「이드로」산하의 각 공사는 외국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는 예외 없이「언더·더·테이블」을 요구했다. 「테이블」밑으로 보이지 않는 돈을 건네주어야 하는 것이다. 「테헤란」시내의 유명「호텔」이나「카지노」등은 모두 「이드로」와 관련이 있었다. 한때 「팔레비」는 왕족들의 이권개입금지를 선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모든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켜 놓은 다음이었다.
독재는 폭력과 금력을 유일한 무기로 삼기 마련이다.
「유엔」사문위의 활동결과는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팔레비」의 악업은 두고두고 역사 의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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