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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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WBC 「플라이」급「챔피언」박지포는 4차의 「마의 벽」을 뚫고 「타이틀」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이로써 세계「타이틀」을 아직 두개나 지키고 있는 셈이 되었다. 새봄을 맞아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세계「타이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미국의 6개, 그 다음이「멕시코」의 3개, 한국은 당당 제3위가 된다.
우리나라는 과언 권투에 강한 나라인가.
우리나라가 강한 것은 중량급이하. 그것은 우리네 체격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량급에서는 가령 일본이 자랑하는 구지견의 「펀치」가 상대방에게 일격을 가할 때까지 불과0·1초.
사람이 눈을 한번 깜박이는데 0·2초가 걸리니까 눈보다 더 빠른 속도와 그 만큼 날쌘 몸짓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데에는 역시 유목한 몸매와 민첩한 한국인이 안성맞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인이 권투에 강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권투는 원래가「헝그리·스포츠」다. 우선 권투에는 돈이 따로 들지가 않는다.
가령「피겨·스케이팅」에는 수천만원의 훈련비가 든다.「스키」도 이에 못지 않다. 장비 값도 엄청나다.
권투에는 두 주먹만 있으면 된다.「코치」요도 처음부터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한번 「챔피언」이 되면 돈과 명예가 하룻밤 사이에 따른다. 박지포가 이번 「타이틀」전에서 받은 돈은 5만「달러」.
불과 45분 동안에 3천만원이상씩 벌어들이는 장사는 또 없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챔피언」을 꿈꾼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메인·게임」에 앞서 갖는 4회전짜리에서 뛰는 선수들이 받는 대전료는 3만원내외. 본인에게는 그중에서 1만원이 돌아가기도 어렵다.
그들중엔「라면」으로 세끼를 때우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한 청년도 많다.
그래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들은 내일의 영광을 꿈꾸며 하루에도 몇 시간씩「로드워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온갖 수모를 이겨나가면서 그들은「링」에 오르는 날을 기다린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챔피언」들도 거의가 가난한집 출신이다.
「멕시코」의 「챔피언」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한국의 왕년「챔피언」들도 모두 가난속에서 자란 선수들이다.
그들의 투지는 그러니까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강인한 의지속에서 자란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챔피언」들이 오래 가지 않는 것도 가난을 너무 쉽게 잊은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박지포의「롱·런」도 그가 얼마나 가난을 잊지 않느냐에 달려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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