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대화하는 로봇의 탄생, 맹자가 살았다면 뭐라고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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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인간은 오래전부터 인체와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무한한 힘의 확장을 꿈꿔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가 양초로 접착시킨 날개를 양어깨에 달고 미궁의 감옥을 탈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최초의 사이보그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비행에 재미를 느껴 한없이 올라가다 태양열에 양초가 녹아 추락사한다. 이 신화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뢰에 한계가 있다는 교훈으로 읽힌다.

 고대 중국에는 최초의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을 보면 주목왕(周穆王)이 곤륜산의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사(偃師)라는 한 유능한 장인을 만난다. 언사는 광대 인형을 만들어 바쳤는데 이 인형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러더니 참람하게도 황제의 후궁에게 윙크를 하는 등 유혹하려 했다. 대노한 황제는 언사가 진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자신을 속인 줄 알고 그를 죽이려 했다. 놀란 언사가 급급히 인형을 해체해 보이니 가죽·나무·아교·물감 등으로 만든 진짜 인형이었다. 감탄한 황제는 언사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테크놀로지가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 인간을 해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인조인간의 제작에 대해 일찍이 공자는 엄중한 경고를 내린 바 있다. “처음 인형을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始作俑者, 其無後乎).”(『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상’)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인형 순장(殉葬)에 대해 가했던 비판인데 그 어느 것도 존엄한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인문주의자 공자의 철학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모두에서 인조인간 제작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매리 쉘리(Mary Shelly)의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의 진보에 대한 낙관이 절정에 달했던 서양 근대의 과학만능주의를 꼬집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인조인간은 불완전할뿐 아니라 결국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중국에서는 인조인간을 서양처럼 외부에서가 아니라 인체 내부에서 수련을 통해 만들어내고자 했다. 도교에서는 복식호흡, 명상 등을 통해 자신의 몸속에서 완전한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다시 태어난 존재가 슈퍼맨인 신선이다. 신선은 사실 테크놀로지보다 정신력의 산물이다.

 사이보그·안드로이드·로봇 등 수십 년 전부터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 출현했던 존재들이 머지않아 우리의 실제 생활에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영국에서 한 컴퓨터 인공지능이 사상 처음으로 심사위원을 속여 인간으로 간주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밖에 일본에서도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로봇과의 사랑도 곧 실현될지 모른다. 이 방면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진전에 대해 상당히 고무적이다. 심지어 일부 과학자는 뇌과학,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로봇의 진화는 필연적인 추세라고 낙관하면서 공상과학 소설가들이나 인문학자들의 우려는 호들갑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과연 그럴까?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상응하는 정신의 고양(高揚) 없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대의 교훈들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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