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상에 실망한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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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처」여사가 수상관저에 들어섰을 때 영국여성들은 여권운동에 중요한 전기가왔다고 좋아들 했다.
천신만고끝에 1918년에야 여성참정권을 얻기는 했지만 영국사회의 보수성에 눌려 기를 펴지못했으니 여왕에 여수상까지 갖게 된 여성들이 크게 기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집권초기를 넘기면서 차차 그런 기대가 허망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대처」의 등장이 여권신장에 새로운 전기가 되려면 최소한 두가지 현상이 수반돼야한다. 하나는「대처」의 둥강이 여성일반에 대한 사희적 통념의 긍경적 변와에 바탕을 둔 등장어야하고, 다른 하나는 수상이 된 여성이 나머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야 된다.
그러나「대처」집권후 이 두가지 점이 모두 신통치않은 것같다. 첫째 「서방세계최초의 여수상」을 탄생시긴 지난 총선거에서 전체 여자의원은 전의회의 27명에서 19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여성정치가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지지도는「대처」시대에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둘째「대처」여사가 여권신장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대처」내각은 최근 여성근로자가 아기를 가졌을 경우 직장에 자동복직할 수 있도록 보장한「취업보호규정」을 폐지하는 시안을 내놓았다.
여권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아마 남성과 균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권리일 것이고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취업할 수 있는 권리일 것이다.
그 권리를 같은 여자로서 보강해주지 못할망정「대처」가 그걸 부인하려고 하니 영국여성들이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처」는 여자이기 전에 정치인이어야하고 한정권의 수상이어야 했던 모양이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여성을 지도자로 뽑는 것이 반드시 여권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첫 여수상의 등장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얻게된다는 것은「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장두성「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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