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봉쇄당하는 창작희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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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상철 <성심여대교수·영문학>
한국 연극은 연기·연출·미술·음악·장치·조명 등 어느 것 하나 예술로서 관객에게 감동을 불
러 일으킬 만큼 제대로 되어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창
작극의 발전이라 하겠다.
한국 연극하면 일단 창작극을 의미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창작극의 발전은 곧 한국 연극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 연극 전반에 걸쳐서 창작극에 대한 문제만큼 오랫동안 지속적인 화제가 되고 논의의 대
상이 된 분야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극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언제나 극계는 번역극이
판을 치고 있고 창작극은 뒷전에서 각별한 호의나 기다려야 한다. 그러한 현장은 도대체 우리의
극계가 어느 나라에서 누구를 위해 연극을 하고 있느냐 하는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야
말로 본말의 전도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연극이 아무리 총체적인 연출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연극에서 작가가 차지
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무질서한 삶과 그를 비춰주는 연극에 궁극
적으로 질서를 부여해주는 자는 다름 아닌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가가 한국연극에서는 대
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연극에서는 한국인의 삶의 실상과 그 맥박을 느끼기
힘들다.
한국의 극작가가 겪는 고롱은 이중으로 소외당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들이 쓴 창작희곡은 문학으
로서도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고 연극으로서는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희곡은 문학으로서만도
엄연히 독립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한국의 문학사는 희곡을 도외시하며 문학잡지는 희곡의 게재를 꺼린다. 작가논을 쓰는 평
논가도 소설 못지 않게 중요한 그 작가의 희곡을 외면한 채 소설만 언급한다. 출판사의 희곡 기피는
더말할 것도 없다.
이같은 현상은 대개 희곡은 연극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 오해와 문학으로서의 희곡독자는
별로 많지 않다는 판단에서 기인된다.
이유야 여하튼 그것이 극작을 자극하고 극작가를 격려하는데 부정적인 작용을 하며 극작에 대한
어떤 열등감마저 조성시켜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보다 앞서 창작극에 대한 가장 큰 오해 내지 그릇된 편견은「창작극은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다. 문학쪽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정작 연극속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창작극하면 마치 빈곤은 당연하게 따라다니는 형용사인 듯 빈곤한 창작극·허약한 창작극은 하나
의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창작극은 오히려 빈곤하고 허약해야 제격인 듯한 착각마저
낳는다.
그런데 한국의 창작극은 과연 그처럼 빈곤하고 허약하기만 한가? 한국의 연극계는 과거는 몰라도
적어도 60연대에 와서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할만큼 많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배출했고 그것은
7O연대에 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아직 빛은 보지 못했지만 잠재적인 역량을 가진 극작지망생은
현재 적지 않은 것이다.
또한 기성 작가 가운데에도 이미 희곡을 썼거나 쓰고자 하는 작가도 많으리라고 본다. 요는 그들을
어떻게 자극하고 유도하느냐 하는 문제와 과연 그런 자각이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가지 좋은 창작극이 없으니까 번역극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럼 현재 하고 있는 번역극은 다
좋은 작품이란 말인가? 만약 우리가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연극은 왜 존재해야 되는가하고 자문한
다면 아무리 우수한 외국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만 못한 창작극을 공연하는 것만 못한 경우가
많다.
그 의의나 재미에 있어서 조차 연극은 문화적인 감각과 생의 「리듬」을 가장 잘 반영해 주기 매
문이다. 사실 요즘 공연되고 있는 대부분의 번역극들은 신통치 못하다는 창작극보다도 훨씬 신통
치 못한 것들이다. 창작극은 없다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연극상은 모두 창작극에 돌아갔다는
사실은 단순히 창작극 우대라는 사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연극의 앞날은 연극인과 극작가가 현재와 같은 불만의 관계에서 빨리 벗어나 서로 돕는 관계에
설 때 비로소 밝아질 수 있다. 극단은 불만스럽지만 창작을 우대하고 부족한 희곡을 보완해주며,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극단과 싸우면서 보다 많은 관객에게 매력과 흥분을 안겨줄 수 있도록 노력
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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