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문법·음성학 적용|『말모이』발견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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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시경선생의 학문적인 업적의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 것은『국어문전음학』『국어문법』『말의 소리』인데, 이 세 책들은 모두 1910년 전후에 출판된 것이다. 이 저서들의 언어학적 가치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사람에 의해 논의된 바이지만, 국어학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시도된 과학적 문법은 과학적 음성학이면서도 그 학문적 수준은 매우 높다는 것이 정평이다.
선생은 학문의 이론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말을 바로 잡기 위해서 토박이 말의 발굴과 그 창조적 운용에 힘을 기울였으며, 모든 국민이 다 글 아는 사람이 되는 지름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글전용을 부르짖고 실천했다.
선생의 학문의 이론과 그 사상은 선생의 후계학자들에 의해 잘 이어받아져서, 그 제자들은 일본 침략시대에 목숨을 걸고 국어를 지키고 글을 정리해서 해방뒤의 우리나라 교육재건에 큰 공적을 끼쳤다.
최근 선생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기 시작하여 그 사상을 재평가하고, 그 학문을 연구 정리 계승하려는 신진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에 따라 선생의 연구의 발자취를 추적 발굴하려는 노력도 힘차게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선생은 나라 말의 발굴과 그 창조적 운용을 위해서 사전을 만들기를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실천에 옮겼던 모양이다.
1910년께「조선광문회」에서 선생을 위시한 제자들이『말모이』(사저)를 만들기 시작하여 서너해 계속하다가 선생의 작고와 이 일에 가장 큰 힘을 기울였던 김○○의 해외망명으로 일이 계속되지 못했다.
원고는 3·1운동이후에 대부분 없어지고 그 일부분만이 다른데로 넘어갔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맨먼저 시작됐다는 그『말모이』원고가 나타나주기를 마음속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말모이』가 비록 극히 그 한부분에 지나지 않기는 하나 보관되어 있어서 학계에 소개된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도 기쁜 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 『말모이』의 윤곽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소개한 이병근교수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내용을 검토해 보면, 주시경 선생의 학문이론이 그 밑바닥이 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소리의 높낮이를 표한 것을 보면, 김○○의 이론이 많이 반영되어 있음도 짐작하게 한다.
우리가 이『말모이』를 보고 처음 맛본 기쁨은 고고학자들이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해 내었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이『말모이』는 우리나라 사전편찬의 역사에, 나아가서는 국어학사에,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문화사에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허웅 서울대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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