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의중 잘못짚은 어떤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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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먼 제주도에서 홀로 사시는 친정어머님의 생신날을 손꼽으면서 푼푼이 모아둔 내 주머니 돈 3만원을 그이가 다급하다며 빌어간 것이 한 일주일쯤 되었다. 이제 생신도 일주일밖에 안 남았기에 그이가 행여 잊은 것이나 아닌가 싶어서 간밤엔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이는『당신엄마 생신만 중요해!』하며 소리를 퍽 지른다.
토라진 나도 『그 돈 안 돌려주면 걸어서라도 제주도에 가겠어요』했더니 『좋을 대로 하라구!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영화도 있지만 당신 체력으로 서울을 벗어나기도 힘들걸』하며 약을 올렸다.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저런 사위를 위해서 어머닌 해마다 참깨며 메밀가루를 올려 보내시곤 했고 모처럼 상경하실 적엔 비싼 전복을 사 가지고 오셔선 전복죽을 끓여 큰 대접 한 그릇을 가득 채워선 『김 서방 훤저 들어』하셨던가, 분한생각만 가득했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였다. 갑자기 『에미 있냐』하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후닥닥 내다보니 진짜 어머님이 서 계셨다. 『아픈 것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전보는 쳤느냐』하시는 거였다.
저녁에 그이가 과실을 잔뜩 사 가지고 들어와선 어머님께 넓죽 절을 드리면서 『이 사람이 글쎄 장모님 생신이 다가오는데도 천하태평으로 있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보다못해 어머님을 오시게 해서 한 두어달 묵어 가시게 하려고 전보를 쳤읍니다』하는 그이의 넉살이었다. 갑자기 그이의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왔는지 가슴이 찡했다.
강계원(서울 동대문구 면목동92의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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