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독립선언문」쓴 33인|이종일선생 생가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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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제2독립선언문의 발굴·공개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기미3·1운동 33인중의 한사람 묵암이종일선생의 고택이 충남 서산군 탁배면으로 밝혀졌다.
묵암선생의 출생지는 이제까지 경기도 포천으로 알려졌으나 향토사연구가 박춘석씨(46· 태안여상교감)가 추적끝에 서산군 원북면 반계리2구89(현 원북면사무소 서쪽2·5km지점)로 확인된 것이다.
지난해 발견된 『묵암비망록』의 기록에는 묵암의 생가가「태안군 원이면 정포리」로 돼있다. 「구군지」에 따르면 월이면은 일제때 원북면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당시엔 정포리(닷개) 로 알려져 있었던 곳. 박씨는 원북면의 제적부를 열람한 결과. 그곳에서 묵암의 이름을 찾아내었고 현재 금성래씨(42)가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금은 아주 낡아버린 묵암선생의 고택은 초가6간 건평21평짜리 「자집. 대들보에 적힌 상량문에 숭정기원 병오년(1726년)에 지어진 것으로 되어있어 지금부터 2백50여년에 축조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고옥은 오랜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는 듯 퇴락해 있어 개축이 불가피한 형편. 그것도 지난3일 집주인 김씨가 수리하려고 벽을 헐었으나 군당국이 영구보존키 위해 작업을 중지시켰다.
묵암기념사업회 회장 이병번박사는 25일 현지에 가 주인 김씨를 만나고 문화학재지정을 받을때까지 공사를 중지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군당국에도 원형이 보전되도록 해줄 것을 바랐다.
묵암선생은 1858년 이곳에서 이오환씨의 장남으로 출생, 한학을 수업하고 1882년 고종황제의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와 정삼품을 제수받았다.
개화의 신문물을 배운선생은 1898년 제국신문을 창간했고, 그 뒤 황성신문도 경영하는등 애국계동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만세운동에 천도교진영의 손병희·권동진·오세창제씨등과 함께 참여한 묵암선생은 독립선언문을 인쇄한 책임자로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3년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1년 반만에 출옥한 선생은 1921년 천도교단독으로 제2의 3·l운동을 모의, 그 선언문을 기초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행적은 지난번 『묵암비망록』의 발견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앞으로의 연구진척에 따라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기여한 그의 역할이 재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는 묵암선생의 공적을 기려 지난 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복장이 추서되었고 이에 따라 유해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후손으로는 손녀 이장옥여사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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